오피니언 시론

시기와 질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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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기와 질투’, 이것은 우리 본연의 모습 중 하나인 듯하다. 이러한 행동 뒤에는 ‘다른 사람에게 앞서려는 동기’가 숨어 있다. 시기와 질투가 범부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도 이런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선거철을 맞아 온통 ‘깎아내리고 올라서기’ 전략이 횡행한다. 이들의 행동도 인간 본성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가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일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폄하하고 뒤엎는 행동이다.

 도로, 수자원과 관련된 시설, 주요 항만과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이라 불리는 것과 관련된 사업들은 먼 시각에서 계획하고 투자해야 한다. 이 정도의 지식은 관련된 개론서 어느 곳을 보아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서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간접자본 시설들의 특성이다.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을 좇아 계획을 바꾸거나 사업을 중단하게 되면 이미 투자된 돈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지난 한 해에 도로·수자원·토지주택 등을 담당하는 공기업들이 지출한 돈만 해도 대략 62조원에 이른다. 같은 해 국가가 사용한 금액이 309조원이니 이것과 비교하면 20%를 넘는 금액이다. 매년 막대한 돈을 들이는 국가사업들이 잘못될 때 생기는 폐해는 실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계획을 함부로 바꾸거나 관리를 소홀히 하면 국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잘못돼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두 배를 넘게 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올해 일본 정부가 늘어난 부채로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만 해도 전체 살림살이의 20%에 이른다.

 국가가 지출하는 돈의 지향점이 어딘가에 따라 과거지향, 현재지향, 미래지향으로 나누어 분석한 학자가 있다. 과거에 진 빚이 국민에게 별다른 혜택은 주지 않고 이자비용만을 남기게 됐다면 이때 지급해야 하는 이자는 전형적인 과거지향적 예산에 해당된다. 큰돈을 필요로 하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투자계획이나 관리감독이 잘못되면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의 큰 부분이 과거지향적으로 돼버린다. 국가 살림살이에서 과거지향적 예산이 커지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늘어난 이자비용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예가 일본만은 아니다.

 권력투쟁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섬뜩하리만치 냉혹했다. 권력에 걸림돌이 되면 동지는 물론 부모나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 로마의 황제들도 앞서 간 황제가 벌인 도로공사나 수로공사·목욕장 건설과 같은 일들을 폐기하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선대에서 벌인 사업을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시설의 관리에도 열심이었다. 특히 팍스로마나라 불리는 전성기에는 사회간접시설을 게을리 한 예는 눈을 뒤집어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새로 뽑힌 서울시장의 첫 작품이 계획된 도로건설 공사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그것이 잘못 계획됐다는 계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해졌다. 얼마 있지 않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그것이 어떤 정권이든 그동안 공들여 놓았던 사회간접자본 사업을 되돌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죽하면 벌써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이것을 담당하는 집행부서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단 말인가.

 정치 지도자들도 인간이다. 그러나 오직 ‘시기와 질투’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앞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나은 것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을 더 인정하지 않을까. ‘깎아내리고 올라서기’가 아니라 ‘인정하고 더 잘하기’를 한다면 그런 인물을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지도자라 하지 않겠는가.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