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19) - 브레이브스와 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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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의 대부호이자 터너 방송국(TBS)의 설립자인 테드 터너(62)는 청년 시절 '올해의 요트선수'에 네번이나 꼽혔을 만큼 열렬한 스포츠광이었다.

또한 야구광이기도 했던 터너는 1976년 '꼴찌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인수하며 마침내 소원풀이를 했다.

터너는 구단주가 되자마자 공격적인 경영기법을 발휘, 당시 최고액이었던 175만달러를 배팅하여 'FA의 개척자' LA 다저스의 투수 앤디 메서스미스를 잡는데 성공한다.

이미 두번의 '20승 시즌'을 가졌던 메서스미스는 75년에도 19승 14패 방어율 2.29의 최정상급 성적을 올렸다. 선발출장(40), 완투경기(19), 투구이닝(322), 완봉승(7), 9이닝당최소안타(6.8) 부문에서 내셔널리그 선두에 올랐으며, 방어율과 탈삼진(213)은 2위를 차지했다.

메서스미스를 영입한 터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등번호 17번을 달게 될 그의 유니폼에 'MESSERSMITH'라는 긴 이름 대신 'CHANNEL'을 넣은 것. '17'은 터너 TV의 채널 번호였다.

그러나 '채널 17'은 그 후로 터너가 무수히 겪게 될 '공수표'의 시작이었다. 11승 11패 방어율 3.04의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메서스미스는 고질적이던 어깨부상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77년이 끝나자 애틀란타에서 방출당하고 말았다.

터너가 구단을 인수한 이듬해이던 77년, 애틀란타의 출발은 좋았다. 2년연속 90패 이상을 당했던 애틀란타는 초반에 8승 5패를 기록하며 '약발'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그 후 악몽의 16연패가 시작됐다.

16연패째를 당하던 날 터너는 데이브 비스톨 감독을 불러 열흘간의 휴가를 주었다. 유망주도 찾아볼 겸 머리를 식히고 오라는 것. 하지만 그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다음날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차려입은 터너는 감독으로 덕아웃에 나타났다. 터너는 당황하는 선수들을 달래 경기에 내보냈지만, 연패기록은 터너 TV의 채널번호가 되었을 뿐이다.

터너의 이런 돌출행동에 가장 긴장한 사람은 처브 피니 내셔널리그 회장. 메이저리그가 구단주들의 놀이터가 될 것을 두려워한 피니는 터너를 감독 자리에서 끌어내렸고, 결국 터너는 '1977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감독 0승1패 승률 0.00'의 초라한 성적으로 감독연감에 오르게 됐다.

77년 애틀란타는 101패를 당함으로써 42년만에 '1백패 시즌'을 가졌다.

그러나 터너의 지속적인 투자는 90년대에 들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터너 TV를 등에 업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는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뉴욕 양키스보다도 더 많은 팬을 가진 인기구단이 됐다.

그는 야구를 몰랐을지언정 적어도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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