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합숙, 분식집 식사 여전…?달라진 건 자신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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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의 위업을 이룬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경기도 체육회 소속)이 5일 훈련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슬비·이현정·김은지·김지선·신미성 선수. 조용철 기자

“야, 이놈들아 싸움을 해봐야 결과를 알지!”

지난달 17일 2012년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캐나다 앨버타 레드브리지 컬링경기장. 정영섭(55) 한국여자대표팀 감독이 관중석으로 선수들을 불러내 호통을 쳤다. 한국팀의 첫 경기 상대는 대회에 참가한 28개 팀 중 최약체인 체코. 실력으로만 따지면 세계 12위인 한국팀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선수들에게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보다 못한 정 감독은 체코팀의 눈을 피해 선수들을 불렀다. “끈질기게 붙어보자. 알았지?”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부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체코에 3-6으로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국은 2010년 세계 1위팀 스웨덴과 2차전을 치렀다. 정 감독은 다시 선수들을 불렀다. “꼴찌한테 졌다고 포기하지 말자. 1등과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초반만 잘 막으면 우리도 승산이 있다. 물고 늘어지자.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않나.” 경기가 시작됐다. 정 감독은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휘했다. 주장(skip)인 김지선(25)이 매섭게 고함을 질러댔다. “스위프(sweep)~ 스위프(sweep)!” 신미성(34) 선수가 던진 돌이 빙판을 미끄러져갔다. 브룸(broom·빗자루)을 쥔 이슬비(24), 이현정(34) 선수가 따라붙으며 길을 닦아댔다. 포물선을 그리듯 나간 돌이 득점구역인 ‘하우스(house)’에 있는 상대 팀 돌을 육중한 소리를 내며 쳐냈다. “됐다!” 정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팀 선수들은 다부졌다. 스웨덴팀이 하우스에 돌을 안착시켜 놓으면 이내 돌을 쳐냈다. 그렇게 2시간30분이 흐르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울렸다. 선수들은 전광판을 봤다. 9-8. 세계 최강을 누른 순간이었다. 외신들은 ‘파란’이라며 앞다퉈 보도했다. 대한민국 여자컬링팀은 그로부터 파죽지세로 6연승을 달려가며 4강에 올랐다. 우리 여자 컬링 역사상 최초였다.

국가대표에서 그냥 일반팀 선수로
예상치 못한 선전에 선수들조차 어안이 벙벙했다. 캐나다전을 위해 현지에서 3주간 현지 교민 집에 홈스테이를 했던 일도, 훈련비가 없어 돌아가며 밥 당번을 했던 일도 추억이 되는 듯했다. 입국할 땐 처음으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변한 게 없었다. 경기장 주변 모텔에서 합숙하고, 분식집에서 밥을 먹어가며 하는 훈련은 여전했다. 지난 5일 오후 7시30분 서울 태릉선수촌 컬링경기장. 정 감독은 다시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4강을 해봤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족하다.”

선수들은 묵묵히 브룸을 잡았다. 20일 열리는 고교 1개 팀, 실업팀 3곳이 참가하는 국가대표팀 선발전을 위해서다. 개별 선수를 뽑아 대표팀을 구성하는 다른 종목과 달리 컬링은 매년 팀 단위로 경기를 치러 단일팀이 국가대표팀이 된다. 이들은 경기도 체육회 소속의 단일 컬링팀이다.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은 3월 말로 끝났다.

컬링은 팀워크의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선수는 팀당 총 4명이다. 하지만 얼음판을 브룸으로 닦아 돌의 속도와 진행 방향을 조절하는 ‘스위퍼(sweeper)’의 심박수가 분당 최대 180~200까지 달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많다. 그래서 후보 선수 1명까지 돌아가며 경기를 뛴다. 신미성·이현정·이슬비·김지선·김은지(22). 스키점프와 같은 여타 겨울 스포츠 종목처럼 이 5명의 선수들이 함께 컬링을 하게 된 데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미성·이현정은 성신여대 체육학과 동기였다. 대학 1학년 때 재미 삼아 들어간 컬링 동아리가 이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전용 경기장이 없어 무용실에서 거울을 보며 ‘인형’을 던져가며 연습했다. 지금은 아마추어 선수를 포함해 전국에 컬링 선수가 600여 명에 달하지만 당시로선 ‘컬링’은 낯선 운동이었다. 그 덕에 그해 ‘국가대표’가 되면서 선수의 길을 가게 됐다. 2003년 정 감독이 있는 경기도 체육회에서 국내 첫 여자 컬링 실업팀을 만들면서 두 선수는 전업선수가 됐다. 하지만 선수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2008년 동료 3명이 “결혼하겠다” “유학을 가겠다”며 운동 포기를 선언했다. 팀이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정 감독은 선수를 찾아 전국을 뒤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북 의성여고 출신의 이슬비 선수. 정 감독이 이슬비를 찾아낸 곳은 구미의 한 어린이집이었다. 이슬비는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정 감독은 “우리 컬링 하자”는 말로 이 선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빙상 선수를 하다 컬링으로 돌아선 김은지와 김지선은 2009년 1월 팀에 합류했다. 겨울체전 초등부에서 금메달까지 딴 유망주였던 김은지는 훈련방식을 둘러싸고 감독과의 이견으로 빙상 선수의 꿈을 접었다. 고교 1학년 때 컬링을 시작했고 졸업 후엔 성신여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선수의 꿈을 이어나가기엔 학비 부담이 컸다. 가계를 책임지는 홀어머니를 생각해 김은지는 정 감독의 실업팀에 합류했다. 실업팀은 한 달 200만원 남짓한 월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지선은 성신여대 재학 중 중국으로 ‘컬링 유학’을 떠났다가 “한국에서 온 스파이 아니냐”는 설움을 톡톡히 받았다. 마음고생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정 감독이었다

5명의 팀 구성이 완료되면서 이들은 2010년 곧바로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돼 내리 2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34살부터 22살까지 나이 차가 꽤 되는데도 이들의 동료애는 끈끈했다. 특히 동갑내기 신미성 선수와 이현정 선수가 그랬다. 신 선수가 2008년 결혼하고, 이듬해엔 이 선수가 뒤를 따랐다. 1년 365일 중 석 달만 빼고 합숙해야 하는 처지라 결혼과 출산은 이들에겐 선수생활의 기로였다. 둘은 먼저 결혼한 신 선수가 아기를 갖고 이 선수가 나중에 갖기로 했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이 선수가 먼저 임신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팀이 돌아가지 않았기에 이 선수는 후보 자리를 자청했다. 임신해 20㎏이 불었지만 출산 후 3개월간 이를 악물고 살을 뺐다. 이현정의 공백은 신미성이 메웠다. 김지선은 “미성 언니가 든든히 버텨주니까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풀리지 않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없을까. 당장 9일 시작되는 모텔 합숙에 대해 물었다. 김지선은 “김연아 선수도 처음엔 힘들게 했다고 들었다”며 위안했다. 오히려 “훈련 때마다 밥을 자주 해먹다 보니 ‘요리 실력’이 다들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맏언니 신미성은 참치죽, 이현정은 월남쌈을 잘 내놓고 이슬비는 김치찜, 막내 김은지는 미역국을 기가 막히게 잘 끓인다”고 했다. 요리를 제일 못하는 김지선이 밥 당번 때 내놓는 건 ‘불고기’란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한 연습은 ‘빙질’ 적응에 맞춰 하고 있다. 얼음에도 ‘결’이란 게 있는데 태릉선수촌에 있는 얼음은 ‘빙상’ 선수들에게나 맞는 빙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컬링’이란 단어처럼 돌이 얼음판 위에서 자연스럽게 휘어져야 하는데 태릉경기장 얼음에선 “돌이 직진만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복병도 있다. 바로 ‘고드름’이다. 한겨울엔 괜찮은데 날씨가 조금이라도 풀리면 태릉경기장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빙판 위에 작은 얼음산이 생겨 훈련 중 얼음판을 돌며 이를 떼어내는 일도 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들은 왜 컬링에 빠져 있을까. 이슬비 선수가 말했다. “힘들다가도 컬링을 하면 다 잊혀지거든요.” 2012년 국가대표팀 선발전에 뛰어든 이들의 꿈은 한결같다. “이젠 세계 4강을 넘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 다음은 뭐냐고 했더니 선수들이 슬며시 웃는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컬링을 평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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