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서울 핵안보회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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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31면

‘안보를 넘어 평화로’(Beyond Security Towards Peace)를 기치로 한 서울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기록적인 58명의 정상, 양자회담이 우리·타국 간 24회, 참가 정상들 간 100회 이상, 1만 명의 대표단과 기자단, 750명의 행사 지원요원, 4만 명의 경찰 동원 등은 당분간 깨기 어려운 기록들이다.

이번 회의를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어떤 실질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회의장만 차려주는 의장국은 안 된다고 생각해 의제와 목표를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설정했다. 핵테러 방지라는 같은 배에 탔지만 얼마나 빨리 갈지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달라 높은 수준의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려웠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안전에 대한 우려와 방사성 테러 문제를 중시해 ‘한국의 의제’로 추가했다. 이번에 정상들은 원자력 안전을 핵안보와 통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했다.

2013년 말까지 고농축 우라늄 감축 방안 제시, 2014년까지 핵물질방호협약 발효도 난색을 보인 국가가 많았으나 이들에게 ‘50명 이상의 정상회의는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설득해 관철했다. 국가별 이행보고서도 꺼리는 국가들이 많았으나 서울코뮈니케에 포함시켰고, 거의 모든 참가국이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참가국의 공약 및 서울코뮈니케 이행 여부를 사실상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조직과 의전 면에서도 참가국들은 G20 때보다 훨씬 더 우리를 신뢰해 줬다. 코엑스가 소음이 많고 복잡하지만 정상들은 아늑한 디자인, 조명, 색조의 회의장 세팅이 논의 집중에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가장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정상그룹 사진 촬영도 국별 연락관이 국기를 들고 사전에 대열을 지어 입장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10분 만에 깔끔히 마쳐 호평을 받았다. 한국 의전을 따라 하는 ‘정상회의’ 한류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상대 희망을 배려하는 유연성과 주도 면밀한 정확성, 두 박자를 모두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의전은 결국 사람이 하므로 우리의 성실함과 열정 그리고 진정성에서 나오는 환대가 정상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차기 회의 주최국인 네덜란드는 한국 뒤에 회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의전 책임자가 회의 종료 후 바로 우리와 일차 협의를 했고 추가 협의도 빨리 갖자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둘째 날 세션에서 스페인 총리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아마노 유키야 사무총장이 “몰도바 세관관리 교육으로 밀수 방지에 기여했다”고 하자 IAEA를 바로 평가해주는 등 맞춤형 코멘트로 회의를 매끄럽고 생동감 있게 주재했다.

이번 정상회의의 의제는 아니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핵군축을, 몇 국가들이 핵분열물질 생산금지조약 체결과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발효를 강조했고, 북한 핵문제 등 비확산 문제를 제기한 국가도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외대 연설에서 러시아와 전략 핵뿐 아니라 전술 핵무기 감축 논의도 곧 할 것이며, 핵무기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에 관한 여타 이슈의 논의를 촉진한다는 것이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신뢰 구축 프로세스도 된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폐회 직전 “핵테러는 마치 흑조(black swan)와 같아 흔히 일어나진 않지만 한번 일어나면 글로벌 재앙이므로 정상들이 이틀의 시간을 내는 것은 꼭 필요한 투자”라고 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회의를 이끈 한국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많은 정상은 현장에서 또는 귀국 후 ‘서울회의가 내용과 조직 모두 완벽했으며 한국은 이제 국제무대 중앙에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한국은 이번 경험을 자산으로 앞으로 글로벌 문제 논의에서 조정과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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