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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극기복례, 예의 본질은 탐욕의 절제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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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예(禮)란 무엇인가
김근 지음, 서강대출판부
340쪽, 1만6000원

동양 고전을 읽을 때 잘 이해가 안 되는 용어가 ‘예(禮)’다. 요즘도 예의범절의 의미로 자주 쓰이지만 과거엔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이었다. 흔히 봉건시대라고 부르는 전통 사회의 뼈대는 바로 예에 함축되어 있었다. 서강대 중국문화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그 점을 파고 든다. 서양식 근대화의 물결 속에 해체된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냈다.

 저자에 따르면, 전통 사회의 핵심 운영 원리가 곧 예였다. 막연히 인사 잘하고, 윗사람 잘 모시고 하는 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는 일상생활의 행동방식을 일일이 적어 놓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배우는 것이 곧 공부였다. 일례로 6세 이전 아이도 일상적인 것은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면서, 밥은 스스로 먹게 하되 반드시 오른손으로 수저를 들도록 가르치라고까지 규정해 놓았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논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공자는 『논어』에서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규범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예를 익히고 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생을 표현한 것이었다.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 “배우고 때에 맞춰 거듭해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도, 배우고 익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는데 이 또한 당시 사람들이 배워야 할 예라고 풀이한다. 반복해서 익히는 과정은 힘들지라도 어느 순간 몸에 익숙해졌을 때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논어』의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은 저자가 강조하는 구절이다. “자신을 억제해 예에 의거해서 실천하면 인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신을 억제한다는 것은 개성의 말살이 아니다. ‘극기복례’란 다름 아닌 탐욕의 절제이며 전통 시대 사대부에게 요청된 핵심 규범이라고 해석했다. 탐욕의 절제가 예의 본질이란 얘기다. 전통의 예를 수구적 이데올로기로 폄하할 순 없겠다.

 옛사람에게 법이란 일종의 강제된 예였다. 예는 법보다 포괄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법이 최상위 규율이다. 법으로 탐욕을 모두 규제할 수 있을까.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가 전통적 예의 의미를 되새겨보자고 하는 배경이다. 들뢰즈·라캉 같은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며 전통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하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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