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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만남·이별의 되풀이, 우린 그렇게 삶을 견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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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어디로 갈까요
김서령 지음, 현대문학
312쪽, 1만3000원

태어난다. 만난다. 헤어진다. 죽는다. 영원히, 헤어진다.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이 다섯 문장이면 충분하다.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 하다 영원히 헤어지고 마는. 이 단순한 삶의 절차가 왜 그리 아픈 것일까.

 김서령의 두 번째 소설집 『어디로 갈까요』는 삶이 겪는 온갖 이별을 담고 있다. 단편 아홉 편에 이별의 다채로운 얼굴을 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별을 통과했거나 통과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겨지는 이야기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압축한 듯, 가슴이 아리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 같이 떠난다. 바람난 무능한 남편이(‘내가 사랑한 그녀들’), 실종된 신문사 입사 동기가(‘오프더레코드’), 췌장암으로 숨진 남편이(‘산책’), 모질게도, 떠나간다.

 불현듯 마주친 이별 앞에서 남겨진 이들은 황망하다. 이 소설이 반짝이는 지점은 이별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어떤 자세에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표제작 ‘어디로 갈까요’에서 서른일곱 박은영은 빚만 남기고 자살한 마흔일곱 남편과 이별한다. 그런데,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는 사라질 거야.’ 은영은 남편이 영영 사라지자 동시에 자신도 사라지려고 한다. 죽은 남편에 대한 애통함보다 해방감이 앞서는 이별. 조금도 슬프지 않은, 오히려 간절히 원했던 그런 이별. 경제적으로 무너진 의사 남편, 그런 남편을 뒷받침했건만 “네 년이 돈을 다 빼돌렸다”며 윽박지르는 시어머니, 까탈 피우는 직장 상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이별의 절차가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은영은 상속 포기 각서를 남긴 채, 지중해의 섬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서 은영은 당혹스런 순간과 마주친다. 로마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그곳에 남을지 어디론가 떠날지 결정하지도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나고 만다. 그러니까 이별의 해방구 따위는 없었던 게다. 간절히 달아나길 바랐지만, 그 이별에 갇혀버린 형국이랄까. 그렇게 김서령의 인물은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며 삶을 견딘다. 참 빤하고, 그래서 짠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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