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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② 맹사성의 명분과 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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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장찬우 기자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민속마을 인근에 있는 맹사성 고택 봄 풍경. 물질적 풍요 보다 정신적 행복을 추구했던 가치가 고택에 배어 있다. [사진 이영관 교수]

맹사성 [孟思誠, 1360~1438] 고불 맹사성은 1360년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으며, 최영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386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세종대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의 반열에 올랐다.

외암사상연구소의 『아산 유학의 여러 모습』에 의하면, “맹사성은 태종대 이후의 시대에 적합한 인간형이었다. 그는 태종대 주요 인물 대부분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면서도 어떠한 정치 세력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공적인 업무 외에는 일체의 관료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비리에도 가급적 관여하지 않았다. 당대의 관행상 맹사성처럼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않고 재산에 관심이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맹사성이 굴곡진 역경을 거치면서도 세종대에 정치적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자기 절제와 결벽에 가까운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성계 일파는 고불의 처조부이자 고려의 충신이었던 최영장군을 제거했고, 그의 조부인 맹유 또한 조선 조정에 나와 일하라는 요청을 거부하다 두문동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그의 가문은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의 부친 맹희도와 함께 맹사성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심의 발현으로 무모하게 목숨을 내놓기보다 피 바람을 피하기 위해 은둔생활 하는 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 후 조선왕조의 기틀이 안정되면서 맹사성은 조선왕조의 벼슬길에 올랐다. 고불은 한편으로는 현실주의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맹사성은 커뮤니케이션의 마술사라고 평할 수 있다. 고불의 처세술은 몰락한 고려왕조에 충성하다 자신뿐 아니라 가문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상황에 처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친교상호이해·정보·통신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도외시한 채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고불은 비교적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실용적인 가치관을 지녔던 인물인 듯싶다. 보편적으로 역사란 이타주의를 실천한 위대한 선각자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가문에 심각한 피해를 키치면서도 공공의 가치를 드높여 위대한 영웅 대접을 받곤 하기에, 고불과 같은 인물들은 크게 부각되기 어렵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인간의 보편적 행복 추구에 대한 열망이 강한 탓에 고불과 같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영웅들이 전해주는 교훈에 많은 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한 현대경영의 관점에서 리더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로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행복한 삶에 바탕을 둬야 하는 현대인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극단적인 이타주의로 존경을 받기보다 맹사성처럼 명분과 실리를 수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확대해나가는 리더십이 보다 현실적면서도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는 직권남용을 철저히 경계했으며, 물욕을 멀리하면서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연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 정승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핵심적인 비법이었다. 말은 쉽지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뇌물을 멀리하고 겸손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역사적인 위인들의 자서전을 들춰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맹사성은 물질적 욕망을 제어하는데 있어서는 참으로 냉철하게 대응했다. 아마도 고불은 보통 사람들보다 물욕이 적었던 인물로 평할 수도 있다. 인간이 물욕을 불태우는 근원적인 동기는 현세에서의 부귀영화를 위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가 물질적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행복보다 정신적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정립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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