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컴덱스 2000 결산] 무선인터넷 부상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이 전기처럼 생활의 모든 정보 및 가전 기기를 연결하는 세상'

17일(현지시각) 닷새 일정을 마감하는 세계 최대의 IT 박람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추계 컴덱스 2000'(COMDEX Fall 2000)은 `인터넷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줬다.

기조연설에 나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휴렛팩커드(HP)의 칼리피오리나 회장,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 등 IT거장들이 `무선인터넷'(wireless),`이동통신'(mobile) `불루투스'(bluetooth) 등 3가지 용어를 지나칠 정도로 반복해서 사용한 것만 봐도 IT산업의 큰 흐름이 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이중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기술의 발전이 중세의 암흑기에서 르네상스를 꽃피웠듯이 모든 기기는 인터넷에 연결돼 `디지털 르네상스'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컨벤션센터, 샌즈엑스포, 힐튼호텔 등 3곳에서 세계 각국의 2천3백여개 업체들이 선보인 1만2천여개 제품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또한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무선인터넷 분야였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PC나 주변기기를 무선으로 연결해 데이터망을 구축하는 불루투스 관련 각종 시스템과 제품이 별도의 전용관에서 전시돼 인기를 모았다.

VoIP(음성데이터통신)를 이용한 무선전화 서비스 및 솔루션을 전시한 부스에도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하드웨어의 경우 무선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포스트 PC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PDA 등 포켓PC를 비롯해 태블릿PC, 오토PC, 노트패드, 인터넷TV 등 다소 생소한 개념의 PC들이 많이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MS는 컨벤션센터의 중심에 차린 대규모 전용관에서 차세대 프로그램 개발 플랫폼인 `닷넷'(.NET)과 포켓PC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해 세로운 시장 선점을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MS는 또한 최근 발표한 임베디드 OS(운영체제)인 `윈도 3.0'을 채택한 협력업체를 대거 초청해 앞으로 무선인터넷 분야에서도 패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이번 컴덱스가 무선인터넷이 화려한 조명을 받은 반면, 다른 제품이나 기술은 별로 새로운 게 없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이번 행사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한 PC의 경우 특히 그렇다. 더욱이 IBM, 컴팩등 주요 PC 제조업체들이 대거 불참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선풍적인 관심을 모았던 리눅스도 올해 행사에서는 국내 업체인 한컴리눅스가 영어 등 외국어판으로 오피스 패키지 제품을 내놓아 부각된 것을 제외하면 역시 볼 것이 없었다.

리눅스에 대한 세미나중에 상당수가 신기술 발표 보다는 "리눅스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리눅스 업계의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컴덱스를 보고 컴덱스의 위상이 한단계 낮아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는 최근 IT 관련 전문 분야의 전시회가 많이 생겨 컴덱스의 희소성이 떨어졌다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리눅스 업체들이 내놓은 제품을 보면 이미 지난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렸던 리눅스 전시회에서 선보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무선인터넷용 차세대 프로그래밍 언어로 부상하고 있는 XML분야도 실력있는 업체들이 컴덱스와 같은 기간에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XML 전시회'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추계 컴덱스는 대기업 보다는 무명 벤처기업들을 위한 데뷔 무대였다. 국내 178개 참가 기업중 삼성전자.전기, LG전자, 삼성SDS 등 7개 기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업들이 모두 벤처기업이었으며 대만, 인도 등 아시아권 벤처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모았다.

컴덱스의 본 전시장은 컨벤션센터이지만 오히려 한국관을 비롯해 각국의 벤처기업들이 모인 샌즈엑스포 전시장에 볼거리가 많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국내 벤처기업들중 무선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선보인 애니유저넷은 200만달러의 외자유치에 성공했고, 대양이앤씨는 3천만달러, 뷰테크는 1천만달러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을 공동 운영한 한국전자산업진흥회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컴덱스 첫날인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각각 6억5천만달러와 4억7천만달러의 수출상담 실적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배 이상 증가한 실적이라고 이들 단체는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의 입장에서 볼때 일부 대기업의 무성의한 전시관 운영 등이 다소 아쉬웠지만, 무명의 벤처기업들에게는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이끌어냄으로써 세계 무대로 진출할수 있게 한 소중한 기회였다는 평가이다.(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박창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