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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YS "차기 대권 이인제가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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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를 초래한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인식 속에서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독설을 앞세워 현실정치에의 ‘관심’을 표명해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접어드는 시점을 택해 김정일 위원장 방한 반대서명운동과 야당 시절 사조직이었던 민주산악회 재건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2002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겨냥하면서 본격적인 수읽기에 들어간 그의 심중을 읽게 하는 5시간 마라톤 인터뷰를 가감없이 지상중계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8월 하순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정세를 강도높게 비판했고 9월 초에는 야당 시절 자신의 사조직이었던 민주산악회 재건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10월 초에는 ‘자유수호국민총궐기운동본부’의 이름으로 ‘김정일 방한 저지 및 규탄·고발서명운동’을 시작했다.

‘IMF를 초래해 나라 망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사회 일각에 여전히 남아 있고 남북화해 무드가 농도를 더해 가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김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오기만 남은 독불장군의 돌출행동’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자못 복잡하게 판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 9단의 노회한 행보’로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을 택해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현실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그의 육성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 10월11일 오전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가을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상도동에 도착한 취재팀은,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 수행실장을 역임하고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직함을 갖고 여전히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김기수(金基洙)
실장의 안내로 곧바로 2층 거실로 올라갔다.

상도동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는 박종웅(朴鍾雄)
한나라당 의원이 배석한 가운데, 약속 시간인 오전 10시 정각 김 전 대통령이 거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던 것보다 혈색도 좋아 보였다. 건강 얘기로 인사를 건네자 김 전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요즈음 마음이 아주 부자입니다

“내가 마음이 부자거든요.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부자라는 겁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밤낮 그 돈을 지키고 어떻게 늘리나 하는 고민을 하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지요. 돈은 없어도 우리 집으로 쌀·생선·꿀 등 여러 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약이라면서 약도 보내주는데, 전라도에서까지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나만큼 마음이 부자인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건강하지요.”

― 요즈음도 조깅을 하십니까?
“조깅이 참 좋은 운동인데, 체력에 무리가 간다고 해서 지난 여름부터는 배드민턴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요즈음은 아침마다 배드민턴을 칩니다. 오늘도 집에서 가까운 산에 가서 35분 정도 쳤습니다. 올해 78세 된 노인분과 자주 치는데, 오늘은 대학에 다니는 그분 따님하고 쳤거든요. 배드민턴이 보통 운동이 아닙니다. 공이 언제 넘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고, 점프도 해야 하거든요. 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매일 60명에서 70명 정도가 모이는데, 그분들하고 일일이 인사하며 악수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나라를 망치고 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 욕을 참 많이들 합니다. 못살겠다면서 이민 가겠다는 사람까지 있어요.”

― 요즈음 상도동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들입니까?
“많이들 옵니다. 대통령 재임때 함께 일했던 각료들도 있고 평생을 사귀어온 친구들도 있지요. 언론도 자주 찾아옵니다. 요 며칠 전에는 아시안월스트리저널, 독일 슈피겔지와 인터뷰를 했어요. 슈피겔은 내 인터뷰를 특집으로 낼 계획인데, 게재 시점은 중동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봐 가면서 결정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일본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위성뉴스도 빠뜨리지 않고 보는데, 외국 언론은 중동사태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합니다. 우리처럼 단순히 외신으로 처리하는 정도가 아니죠. 유고사태 때만 해도 연일 톱뉴스로 다루었거든요. 우리 언론이 좀 반성을 해야 합니다.”

▶ 서도전시회 수익금으로 ‘기록관’ 건립 예정

― 자택이 생각만큼 넓지 않아 보입니다.
“2층까지 전부 쳐서 101평입니다. 31년 전에 아버지가 사준 건데, 내 이름으로 된 유일한 재산이지요. 내가 이 집 말고 다른 무엇을 더 소유했다면 김대중씨가 그냥 두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해까지 검찰이다 국세청이다 시켜서 내 뒷조사를 하고 청문회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요, 김대중씨가 불행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지….”

― 최근 거제도 생가(生家)
를 경상남도에 기부채납하신 것으로 압니다. 생가는 원래 서도전시회를 열어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기념관을 짓기로 했던 곳 아닙니까?

“거제도 생가가 지은 지 121년이 됐습니다. 하도 오래 돼서 비도 새고 쓰러질 위험도 있었지요. 2, 3개월 전에 김혁규 경남지사가 찾아와 집을 양도해 주면 잘 복원해서 보존하겠다고 해요. 생가에는 요즈음도 주말이면 300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부채납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러라고 했지요. 그런데 다음날 도청에서 집이 아버님 이름으로 돼 있다는 전화가 왔어요. 내 것이면 구두(口頭)
로도 그냥 넘겨줄 수 있는데, 아버님 소유니까 별도의 양도증서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요즈음도 매일 아침 아버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는데요, 전화를 걸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집을 주자고 했죠. 처음에는 안 내놓으시려는 것을 설득 끝에 양도 절차를 마쳤습니다. 경상남도에서 곧 보수작업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기념관은 건립을 않기로 한 겁니까?

“기념관은 아니고요. 생가 부근에다 작은 기록관 하나를 세울 생각입니다. 12월4일부터 1주일 동안 부산에서 서도전시회를 열어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에 맞는 규모로 지을 작정입니다. 이 기록관에는 보관할 데가 없어서 그냥 쌓아놓고 있는 여러 가지 자료를 잘 정리해서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서도전시회 얘기가 나오자 김 전 대통령은 비서진을 시켜 전시회때 내놓을 작품들을 거실로 갖고 오게 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호연지기’(浩然之氣)
등 전부터 즐겨 써온 글도 있었고, 논어의 내용을 길게 인용해서 만든 12폭짜리 병풍도 있었다. ‘의인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을 옮겨 적은 것도 있었는데, ‘처음엔 근심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즐거움이 있다’는 뜻의 ‘선우후락’(先憂後樂)
이라고 쓴 작품도 눈에 띄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작품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그 뜻을 풀이해 주었다.

김 전 대통령은 “붓글씨는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든지 쓸 수가 있어 좋다”며 “전시회를 앞두고 있어 요즈음은 시간만 나면 쓴다”고 했다. 붓글씨를 쓰는 할아버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먹을 가는 시중을 들던 일, 그러다가 깜박 졸아 할아버지한테 호되게 꾸중 듣던 기억 등을 얘기할 때는 유난히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인사말과 서예작품 설명 때문에 서두가 예상보다 길어진 인터뷰는, 작품 설명을 마친 김 전 대통령이 “뭐든지 다 물어보세요”라며 자리에 다시 앉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민주산악회 재건 방침을 밝히고 김정일 방한 반대 서명운동을 추진하면서 대외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십니다만, 민주산악회 재건 작업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습니까?

“나는 이 민주산악회가 대단히 크게 된다고 봅니다. 지금도 굉장히 커지고 있고요. 사람들이 보는 눈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어요. 그 전까지는 30평쯤 되는 조그마한 사무실을 쓰고 있었는데, 나하고 같이 협력해 나가는 운영위원들이 중심이 돼 푼푼이 돈을 모아서 110평짜리 사무실을 얻었다고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바로 뒤에 있는데, 참 위치가 좋지요. 전에 이미 현판을 써주었는데, 19일날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1,000명 정도가 모여서 칵테일 파티도 합니다. 그날 참석해서 인사말도 할 예정입니다. 솔직한 얘기로 민주산악회 하는 그 사람들이 애국자입니다. 돈이 있거나 하지는 못해도 진짜 그 사람들이 애국자죠. 용기도 있고요.”

▶ 민주산악회, 정치세력화할 수도 있다

― 민주산악회는 지난해 재건하려다 중단했잖습니까?
“한나라당을 위해서 그랬지요. 이회창씨를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한나라당을 위해서였습니다.”

― 이 시점에서 산악회 재건을 추진하는 배경은?
“그것은 우리나라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산악회가 없었으면 전두환씨가 지금까지도 독재를 계속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박정희 18년보다 더 길게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 사람이 항복을 한 것은 민주산악회 때문입니다. 야당을 할 때 내가 처음 산에 갔을 때는 세명뿐이었거든요. 그것이 10명이 되고 100명이 돼서 나중에는 1,000명으로까지 늘었던 겁니다. 그 사실이 뉴욕타임스와 아사히 등 세계적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지요. 뉴욕타임스는 헨리 스코트 기자가 쓴 기사를내 사진까지 실어서 2면에 전면(全面)
으로 났었지요.”

― 조직 개건후 민주산악회는 어떻게 운영하실 겁니까?
“지금은 이 체제로 가는데, 달라져야죠. 조직이 커지면 감당을 못하거든요. 민주산악회는 어쨌든간에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키울 겁니다. 돈이 없으니까 돈을 대주지는 못하지만, 민주산악회가 운영자금 정도는 대고도 남는다고 봅니다. 지금도 사무실 등을 얻는데 성금이 안들어오면 못하는 거죠. 모두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조직이 갖춰지는 것을 봐가면서 금년 중에 몇 군데로 등산을 할 겁니다. 어디 어디로 갈지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초청을 한 데가 여러 군데가 있거든요. 등산을 가면 초청한 사람들 집에서 밥도 먹고 하면서 1박이나 2박을 할 겁니다. 경기도는 조만간 갈 예정입니다. 엄청난 숫자가 산에 같이 갈 겁니다. 어디는 등산에 나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를 한 마리 잡을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 지난해 민주산악회 재건 때는 정치세력화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민주산악회가 정당화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정치세력화한다는 것하고 정당이 된다는 것하고는 다르지요. 정당은 만들지 않겠지만, 이것이 정치세력화 할 수는 있지요.”

― 정치세력화가 이뤄지려면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참여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들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요.
“내가 아직까지 어느 한 사람한테도 권유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박종웅 의원한테도 권유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민주산악회에 참여하는 게 그 사람들을 위해서나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치인들이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보십니까?
“나는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시대가 변하거든요.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어제 우리나라의 아주 큰 시의 시장이 민주산악회 간부 60명을 초대해 저녁을 냈습니다. 이것도 시대가 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놀랄 일입니다. 어제 저녁에 그 사람한테서 직접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줄은 몰랐거든요.”

― 자유수호국민총궐기운동본부 이름으로 추진중인 김정일 방한 반대 서명운동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습니까?
“아직까지 정확하게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서명운동도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답니다. 매시간마다 불어나고 있어요. 우리 집으로도 서명지를 팩스로 보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명 참여자의 70% 정도가 여자분들이라는 겁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서명운동 참가자는 이대로 가면 엄청난 숫자로 확산될 것입니다.”

▶ 김정일 방한 반대 서명운동, 엄청나게 확산중

― 서명운동은 언제까지 하실 계획입니까?
“계속 할 겁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세력화가 돼 국민운동본부가 구성되는 것 아닙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방한을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방한을 못한다고 봐요. 하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방한하면 우리나라가 공산화가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오려면 사과를 하고 와야 합니다. 그러면 괜찮아요. 아웅산테러사건, 최은희·신상옥씨 부부 납치사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일본인들 납치한 것 등 사과할 게 많이 있잖아요? 6·25 전쟁도 김일성이가 했지만, 아버지가 한 일도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과를 하면 방한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반대할 겁니다.”

― 지난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김일성의 서울 방문 약속을 받아내도록 실무자에게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압니다. 김일성의 방한을 요구했으면서, 김정일의 방한은 반대하는 것은 모순 아닙니까?

“그때 하고는 상황이 전혀 다르죠. 내가 말씀드릴게요. 1994년의 정상회담은 내가 추진한 게 아니고 김일성이가 카터 미국 대통령을 통해서 먼저 제의한 겁니다. 북한 핵위기가 한창일 때 평양을 방문한 카터 대통령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영삼 대통령하고 김주석이 만나야 한다’고 했대요. 그랬더니 김일성이가 즉석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겁니다. 카터 대통령이 ‘내가 서울로 가서 김영삼 대통령과 점심을 먹기로 돼 있는데, 그 자리에서 이 말을 전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김일성이가 ‘아니, 전해 달라는 겁니다’라고 하더래요. 당시의 정상회담은 그렇게 해서 추진이 됐던 겁니다.”

― 당시 김일성의 방한 문제는 어떻게 협의가 됐습니까?
“내가 평양을 먼저 갈테니 김일성이도 서울로 오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홍구 통일부총리하고 북한의 김용순이가 판문점에서 13시간 동안 실무회담을 했어요. 그런데 북한이 절대 말을 안 듣는 겁니다. 김일성 방한 문제 하나만 갖고 한 시간 정도를 싸움만 하는 겁니다. 청와대에서 폐쇄회로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정회를 시키고 이홍구씨하고 통화를 했어요. ‘이부총리, 이 문제 갖고 회담을 깨면 안된다. 북한이 정녕 약속을 안하면 이 문제는 평양에서 회담하는 두 사람한테 맡기는 것으로 합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 김일성이 서울 방문을 순순히 수용했으리라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김일성이를 만나면 맨 먼저 앞에서 얘기한 그런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계획이었습니다. 사과하면 우리도 용서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그때 내가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메모한 게 완전히 노트 한권 분량이었는데, 그 맨 앞에 그 문제가 들어 있었거든요. 그때 김일성이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미국이 폭격을 하면 완전히 작살나게 돼 있었습니다. 김일성이가 6·25때 유엔군에 쫓겨 만주까지 도망친 적이 있잖아요. 그때를 생각하니까 겁이 난 겁니다. 벼랑 끝에 몰리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나하고 만나자고 한 겁니다. 따라서 나하고 회담을 했으면 굉장히 양보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여론조사를 해 보면 국민들은 대북정책을 김대중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90% 정도가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것은 여론조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김대중씨의 인기도는 20%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회창씨 인기도 비슷하게 완전히 땅바닥을 헤매는 겁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기도가 바닥인 두 사람이 요 얼마 전에 영수회담을 하며 만난 겁니다. 그 자리에서 합의한 게 영수회담을 2개월마다 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내가 야당 총재를 박정희 시절에 했지만, 18년 동안 박정희를 만난 게 딱 한번뿐입니다.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야당 총재가 대통령과 2개월에 한번씩 만나고 있습니까? 이것은 나라를 같이 망칠 준비를 하는 겁니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해요.”

― 남북문제에 대한 질문은 후반부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지난 10월초 검찰을 통해 불거져나온 15대 총선 당시 안기부 비자금의 여당 유입 의혹에 대해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김정일 방한 반대 서명운동이 본격 추진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당시 여당 총재이기도 했던 YS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 안기부 비자금 총선유입 의혹은 ‘웃기는 얘기’

“저는 그게 서명운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제가 돼서 아주 고맙죠. 그러나 무슨 자금이니 하면서 나를 겨냥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내가 지금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대통령 재임시 돈을 한푼도 받지 않은 겁니다. 받은 게 없으니까 누구한테 줄 수도 없잖아요? 여기 박종웅 의원만 해도 내가 비서로, 또 국회의원으로 쭉 같이 있었지만 대통령때 돈을 한푼도 준 게 없습니다. 다른 어떤 누구한테도 돈을 준 게 없습니다. 받지를 않았으니 줄 게 없잖습니까?”

― 총재로서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야당할 때는 돈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8대 국회 때까지는 우리 집에 돈이 좀 있어서 그걸 갖다 쓰다가 그 다음부터는 돈을 만들어서 썼습니다. 당을 운영하고 국회의원선거 치르고 또 의원들 지구당 운영하는 데 쓰라고 상당히 큰 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격적으로 돈을 내가 가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 전까지는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하나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된 후 국민들한테 저축하는 모범을 보이거나 무슨 기금 조성하는 데 동참하느라고 내 이름으로 된 통장 몇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돈을 어디다 감추기 위해 가명으로 통장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돈이 당으로 들어가고 어쩌고 합니까?”

― 검찰은 당시 안기부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계좌에서 나온 돈이 황명수 의원측 계좌로 들어간 게 확인됐다고 밝혔는데요.
“안기부 계좌니 뭐니 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요, 그게 또 실제로 있을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런 가능성은 있겠지요. 한나라당이 당시 여당이니까 사업하는 사람들한테서 정치자금을 상당히 얻어다고는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에서 선거 때가 되면 있어온 일 아닙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내가 야당 시절 돈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았습니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야당은 돈을 안주면서 여당에만 주더라는 말이죠. 그래서 대통령이 된 후 내가 지시해서 여당을 통해 정치자금법을 제정한 겁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각 정당에 국고보조금이라는 게 나갑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귀족입니다. 총재나 당 간부들이 어디 갈 때 쓰는 여비도 전부 그 돈으로 쓰는 것 아닙니까? 밥값도 거기서 나가고요. 그게 귀족 아니고 뭡니까? 지금 야당은 돈을 어디서 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서로 총재 하려고들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편한 야당은 우리 역사에 없었잖아요? 국회 의석수대로 받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들어가는 돈이 민주당보다도 많잖아요?”

― 비자금 유입 의혹이 제기된 후 황명수 의원 등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거나, 아니면 전후사정을 보고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일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요, 황명수 의원은 무슨 사건만 있으면 이름이 올라갑니까? 아니 황명수 의원이 지금 어느 당에 있습니까? 민주당에서 당무위원인가 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면서요?”

―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이 최근 상도동을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올해 들어서부터 그 사람들이 가끔씩 옵니다.”

― 안기부 자금 유입 의혹에 대해 얘기를 듣거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온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문에 그런 뉴스가 난 이후에 그 사람들이 여기 온 적도 없거니와, 내가 그런 얘기를 해본 적도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담·김진용 월간중앙 편집장 <ktrue@joongang.co.kr>
정리·박종주 월간중앙 차장 <jj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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