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의 성주가 심어 퍼뜨린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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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성주풀이’에 나오는 성주는 집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입니다. 그 신은 집의 대들보에 앉아 있기 때문에 상량(上樑)신이라고도 합니다. 이 성주풀이에는 이른바 소나무의 탄생신화가 나오지요.

원래 하늘나라에 살던 성주는, 하늘나라에서 죄를 짓고 땅으로 쫓겨 내려옵니다. 유배온 셈이지요. 땅 위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를 막연해 하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던 성주의 눈에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가는 제비가 보였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하늘을 훨훨 나는 제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성주는 제비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때 제비들은 오늘날의 경상북도 안동 땅인 제비원에 살고 있었지요. 제비를 따라온 성주는 바로 그 제비원에 보금자리를 틀게 됩니다. 성주는 자신이 살아야 할 집을 짓기 위해 제비에게 간청을 했고, 제비들은 성주에게 솔씨를 줍니다.

성주는 제비에게 받은 솔씨를 우리나라 전국의 산천에 골고루 뿌리지요. 그 솔은 우리나라 산의 산신령들과 바다의 용왕의 보살핌을 받고 점점 자라서 큰 집을 짓고도 남을 만한 재목감인 황장목이 됩니다. 그 중에서 성주는 자손을 번창하게 해 주고 부귀와 공명을 누리게 해 줄 성주목을 고르지요.

이 성주목은 함부로 벨 수 없었지요. 산신과 용왕이 키워준 나무잖아요. 그래서 성주는 갖가지 오곡백과를 제물로 올린 산신제를 지낸 뒤, 잘 자란 성주목을 베어내 집을 짓게 되고 그 집에서 살게 됐다고 합니다.

소나무는 이렇게 성주가 땅 위에 내려오면서 제비로부터 씨앗을 받아 이 땅에 뿌려진 것이고, 또 잘 자란 소나무는 집을 짓는 훌륭한 재목감으로 쓰였던 거지요.

▶한나라에서 전해오는 소나무 이야기

중국 한(漢)나라의 성제(成帝) 시절, 사냥 꾼 한 사람이 사냥을 하던 중, 옷을 입지 않고 온 몸에 검은 털이 난 사람을 발견하고는 잡으려고 했어요. 너무도 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그를 놓쳤어요. 그는 다른 사냥꾼들과 협력해서 그 일대를 수색해서 그 사람을 잡았지요.

잡고 보니 그 사람은 젊은 여자였어요. 그 여자는 원래 진(秦)나라의 관녀(官女)였답니다. 그녀는 진나라가 멸망했을 때 산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겨우 건졌지만 맨 몸으로 피신한 상태에서야 곧 굶어죽게 됐지요.

그때 고장부라는 신선을 만나게 됐는데, 그 신선은 그녀에게 솔잎과 솔방울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답니다. 솔잎과 솔방울을 먹기 시작하니, 추위와 더위도 모르고 배고픔과 목마름도 느끼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는 진나라가 멸망한 뒤로 2백년이나 지난 시절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젊은 여자는 놀랍게도 200살이 훨씬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2백 여년 동안 솔잎과 솔방울만 먹으면서 젊은 사냥꾼들도 쫓아가기 힘들 정도의 활력을 유지하며 그토록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사냥꾼들은 그 여자를 마을로 데려와 곡식을 먹게 했더니 처음에는 토하고 못 먹더니 차츰 익숙해졌어요. 그러다가 몸의 털은 완전히 다 빠지고 점차 늙어서 마침내 죽게 됐습니다.

소나무가 젊어지고, 좋은 약이라고는 하지만, 온몸에 검은 털이 난다면... 해 볼만 하신가요?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썼다가는 큰코 다치시게 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위의 사진들은 지난 10월 8일 천리포수목원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소나무가 좀 외설스럽게 쓰였던 이야기 하나 전하겠습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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