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제 대기자
김정은이 바보가 아닌 이상 국제사회와 중국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북한이 광명성 발사를 강행하면 그것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고 미국이 북한에 영양식품 24만t을 제공한다는 북·미 간 2·29 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이 위성발사를 강행하면 미국은 북한에 영양식품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더 고립되고 백성들의 생활이 더 궁핍해지면 중국의 부담이 늘어난다. 북한의 후견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국제적으로도 체면을 크게 잃는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김정은은 어떤 계산으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양심에 도전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것인가.
이 다급한 물음에 대한 답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BC 348~332)가 2300여 년 전에 쓴 『정치학(Politika)』 제5권에 나와 있다. 그는 백성(피치자·被治者)을 빈곤상태에 묶어 두는 것이 독재자(Tyrannus)들이 애용하는 술책이라고 썼다. 백성들이 매일을 힘겹게 살아가야 반란을 일으킬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독재자들이 백성들을 빈곤과 고된 노역에 묶어 두는 방법의 실례로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미드 건축과, 아테네의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투스 일족의 올림포스 신전 공사를 들었다. 그는 독재자가 백성들한테서 갈취한 돈으로 친위대를 유지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북한도 백성들이 장마당에서 힘겹게 벌어 모은 목숨 같은 현금재산을 느닷없는 화폐개혁으로 털어가서 군대유지비로 쓴다.
김정은에게는 아버지한테서 세습받은 권력의 정착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빈곤 해결로 백성들의 생활고를 덜어줄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백성들은 배가 부르면 자유를 달라고 하니까. 광명성 발사로 두 가지 효과를 거둔다. 김정은 자신의 ‘위대한 리더십’을 과시하고 아버지의 유훈을 실천한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덤이 또 있다. 위성발사는 장거리 미사일 실험의 다른 이름이다. 2009년에 발사한 광명성 2호의 2단계 로켓은 3200㎞를 날았는데 이번 것은 6000㎞ 이상을 목표로 삼은 것 같다. 거기에 핵탄두만 실으면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위력을 갖는다(고 선전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하면 핵·미사일로 무장하자는 군의 충성은 확실히 확보된다. 군부는 리비아의 카다피가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멍청하게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한 결과라고 믿고 북한이 살 길은 핵무장뿐이라는 입장을 김정은에게 세일하고 있을 것이다. 광명성 3호 발사로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못지않은 불세출의 영도자라는 위상을 얻는다. 그러니 미국과의 합의를 깨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나 중국·러시아의 반대 따위는 묵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박이다. 여세를 몰아 김정은은 개선나팔을 불면서 4월 중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방위원장에, 노동당대표자회에서는 당총서기에 오를 수가 있다.
중국이 우리가 모르는 비장의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한 북한은 위성발사를 강행할 것이다. 미국은 어렵사리 조성된 북·미 대화무드가 연기처럼 사라지는걸 바라보면서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대화 재개 사이클이 돌아올 때까지 인내모드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무정책으로 수수방관할 것이다. 이 대통령도 임기 안에 대북정책에서 업적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체념의 말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련한 북한 주민들은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광명성이라는 이름의 ‘암흑성’에 한숨 섞인 환호를 보낼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