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0 다시 세상으로 ⑥ 연 매출 20억 ‘e발레샵’ 성미화 대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1 ‘e발레샵’ 성미화 대표가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발레 연습복과 토슈즈 사이에 앉아 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며 몸은 힘들었지만 영어나 컴퓨터·무역·회계 등 하나씩 모르는 것을 배워나가는 즐거움이 컸다”고 말한다.

발레를 전공하는 딸은 토슈즈가 일주일에 네다섯 켤레씩 닳아버릴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한 켤레에 4만5000원인 토슈즈 값이 만만치 않았던 엄마는 공동구매를 생각해 냈다. 러시아 회사에 서투른 영어로 보낸 e-메일은 두 달 후 200켤레의 토슈즈가 되어 집으로 왔다. 성미화(53)씨의 발레 전문 쇼핑몰 ‘e발레샵’과 ‘키즈발레’는 열성 엄마의 도전에서 시작된 사업이었다. 딸이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리나로 성장하는 동안 엄마의 쇼핑몰도 연 매출액 20억원대의 발레용품 업계 1위로 커졌다.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자녀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엄마들과 마음을 나누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는 성씨를 만났다.

글=문은영 객원기자

2 경기도 분당에 있는 ‘e발레샵’ 의 오프라인 매장. 3 2004년 인터넷 쇼핑몰 ‘e발레샵’을 개설한 뒤 처음으로 러시아 그리쉬코사로부터 받은 인보이스(거래명세서).

 -원래 발레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지 않다. 작은 딸이 초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때 온 가족이 함께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본 게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작은아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서 3학년 때 동네 발레학원에 보냈다. 그냥 취미로 가르친다는 마음이었다.”

 -딸이 발레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부터 찬성했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딸이 예술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월급쟁이 아빠를 둔 평범한 가정에서 발레를 시킬 여력이 있을까 싶어 말렸다. 하지만 혼자서 발레 연습 일지를 쓸 정도로 아이의 의지가 강했다. 오죽하면 내가 연습 좀 줄이고 레슨도 적당히 받으라고 했을까. 그렇게 노력한 끝에 딸은 예중·예고를 거쳐 무용과에 진학했고,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드미 솔리스트(준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결혼 당시 중·고교 수학교사였다고 했다. 남들은 다 부러워하는 직업인데, 왜 그만두었나. “딸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은 수원이었는데 평택의 학교로 발령이 났다. 매일 아침 아이를 안고 길에서 기다리다가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시면 시외버스를 타러 뛰어가야만 했다.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퇴근도 일찍 할 수 없었다. 매일 밤 10시 넘어서 퇴근하려니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작은딸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를 그만뒀다.”

 -그만둘 때는 전업주부로 살겠다고 결심한 건가. “아이들이 크면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기회가 있겠지 싶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작은아이가 중학교 때부터 국제 콩쿠르에 나가면서 의상비부터 비행기 티켓, 체류비까지 남편 월급만으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창업을 염두에 두고 스크랩도 많이 했지만, 외환위기 상황이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남편이 말렸다.”

 -토슈즈 공동구매로 일의 실마리를 풀었다. “딸이 예고에 진학하니 토슈즈가 일주일에 네다섯 켤레씩 닳았다. 한 켤레에 4만5000원인 토슈즈 값이 만만치 않아 부담스러웠다. 토슈즈를 싸게 구입하면 좋을 것 같아 예고 발레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공동구매를 제안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설문조사를 했더니 90% 넘는 학생들이 러시아의 그리쉬코(Grishko)사 제품을 원했다. 아이가 고3이던 2003년 초여름, 무작정 e-메일을 그리쉬코사로 보냈다. 영어 편지를 쓰려니 힘들었지만, 밤새 정성껏 고쳐서 보낸 e-메일에 답이 왔을 때 너무 기뻤다. 주문 후 토슈즈가 손에 들어올 때까지는 2개월이 걸렸다. 200켤레를 주문했더니, 가격을 7000원씩 낮출 수 있었다.”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회사원인 남편이 사업 아이템으로 괜찮겠다면서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덜컥 사업자 등록증을 낸 게 2003년 10월의 일이었다. 처음엔 ‘견적송장(proforma invoice)’이 뭔지 몰라서 무작정 돈을 송금했는데, 알고 보니 청구서가 아니라 견적서였다. 이렇게 모든 것이 실수투성이였지만 수입과 통관, 원산지 증명 등 문제를 한 단계씩 풀어가면서 자신감이 생겨났다. 2차 공동구매를 제안했더니, 1000 켤레의 주문이 들어왔다. 인터넷 쇼핑몰 ‘e발레샵’은 2004년 1월 오픈했다. 집에서 혼자 일했는데 첫 달에 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판매 품목을 늘리고 자체 브랜드도 만들었다. 사업 확장은 순조로웠나. “처음엔 토슈즈만 수입 판매하다 점차 발레용품까지 취급하게 되었다. 프랑스 발레용품 회사인 산샤(Sansha) 사이트를 찾아보니 아시아 지역 관할 공장이 중국에 있었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 다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서 푸저우에 있는 공장을 찾아갔는데 영어는 물론 한자도 안 통했다. 손짓발짓에 그림까지 동원해 간신히 주문에 성공했다. 토슈즈는 국내산이 거의 없어 수입품을 판매했지만, 연습복만큼은 우리나라도 뒤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세계적인 브랜드도 연습복은 디자인이 다양하지 않으니, 내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하청공장을 소개받아 주문을 냈더니 품질이 만족스러웠다. 딸의 발레 공연복을 살펴보고 조금씩 디자인에 반영하니까 고객 반응도 좋았다.”

 -오프라인 매장을 열게 된 이유는. “토슈즈를 직접 신어보며 고르고 싶다는 고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2006년 10월 사무실을 얻으면서 한쪽 구석에 피팅룸 개념으로 매장을 마련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던 학생들이 방학 때 매장에 와서 구입하며 입소문을 내준 덕에 손님이 늘어 분당에 매장을 따로 차리게 됐다.”

 -한창 사업을 확장하는 도중에 창업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통해 어떤 면에서 도움을 받았나. “직원이 11명으로 늘어났을 때다. ‘당장 잘된다고 안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9년 창업교육기관 ‘고도몰’을 찾아갔다. 교육생 입장에서 보니 내 사업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네킹 대신 모델을 써서 제품 사진을 찍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또 온라인 쇼핑몰을 대상층에 따라 두 개로 세분화했다. 2009년 4월 ‘키즈발레’를 오픈하고 어린이용 제품을 본격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업이 순조롭게 자리 잡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딸들의 도움이 컸다. 작은딸 친구들을 통한 입소문이 빨랐고, 발레용품 쇼핑몰 1호라는 선점 효과도 컸다. 대학 1학년이던 큰딸은 겨울 아침 8시에 예고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전단을 돌렸다. 콩쿠르가 있는 날은 경연장 앞에서도 전단을 돌렸다. 또 하나, 성공을 위해선 열정이 필요하다. 나는 마흔넷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악착같이 일했다. 일요일에 쉬게 된 것도 최근 들어서의 일이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괜찮다 싶을 때 영역을 하나씩 늘린 것도 성공비결 중 하나다.”

 -일반적인 쇼핑몰과는 달리 발레 소식도 많이 다루고, 공연 동영상도 올린다. “발레 교육을 시키는 엄마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다쳤다고 하면 발레리나를 많이 진료하는 병원을 알려주고, 지방 학생들에게는 발레단 서머캠프에 참여해 보니 어떤 게 좋더라 등등의 조언을 해준다. 진정성을 갖고 대하니 고객들도 나를 신뢰하는 것 같다.”

4060 다시 세상으로 육아와 내조, 그리고 살림에 ‘올인’하며 살아온 주부들. 마흔이 넘어서면서 삶의 고민이 커진다.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지만 내 존재를 대신 증명해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쇼핑으로,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삶이 너무 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늦깎이로 일을 찾아 ‘성공한 프로’로 자리잡은 여성들에게 들어본다. 새로운 길을열망하는 ‘4060’에게 롤 모델이 될 여성들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