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만원 유모차, 한국 오니 105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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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백일 된 첫딸을 둔 문소현(34·여)씨는 이달 초 백화점에서 맥클라렌 ‘테크노클래식’ 유모차를 샀다. 세일해서 48만원이었다. 요즘 아기 엄마들 사이에 ‘국민 유모차’로 불리는 영국 브랜드 맥클라렌은 수입 유모차 중에선 그나마 가격대가 낮은 편이다. 문씨는 “원래 사려고 했던 잉글레시나 아비오는 세일해도 68만원이나 돼 포기했다”며 “수입품이라고 해도 유모차 가격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수입 유모차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부모들의 푸념, 일리가 있었다. 28일 소비자시민모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모차 판매가격은 외국에 비해 최대 2.2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6개 유모차의 백화점 판매가격을 지난달 5개 국가(미국·일본·네덜란드·이탈리아·스페인)와 비교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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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레시나(이탈리아) ‘트립’ 유모차는 한국에선 42만5000원이지만 이탈리아 판매가격은 18만원이 채 안 됐다. 조사 대상 중 최고가인 캄(이탈리아)의 ‘풀사르’(198만원)도 현지에선 반값 수준(97만8947원)이었다. ‘유모차계 벤츠’로 불리는 스토케(노르웨이) ‘엑스플로러’는 국내 판매가격(189만원)이 네덜란드보다 70% 높았다. ‘고소영 유모차’로 유명해진 오르빗(미국) ‘G2’(145만원) 역시 미국 현지와 비교하면 58% 비싼 가격이다.

 유모차가 한국에서 유독 비싼 건 유통구조 때문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정책국장은 “유모차는 브랜드마다 수입업체와 공급업체가 독점적으로 정해져 있는 구조”라며 “시장 경쟁이 아닌 ‘고가 마케팅’ 전략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보령메디앙스가 판매하는 네덜란드 브랜드 부가부, 퀴니, 맥시코시의 유모차 가격이 그 예다. 세 브랜드 대표제품 값은 현지에선 51만~83만원으로 제각각이지만 한국에선 똑같이 105만원의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유모차는 수입업체 30%, 공급업체 15~20%, 백화점 30~35%씩 마진을 챙긴다. 여기에 판촉비와 물류비까지 더해 수입원가의 3배 가격에 팔리고 있다.

 고가 마케팅이 가능한 데는 내 아이에게 최고의 제품만 주고 싶은 부모 심리가 작용했다. 70만원대 이탈리아산 유모차를 산 장모(34·여)씨는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애한테 좋은 걸 해주고픈 마음에 비싼 걸 택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수입 유모차만 찾으면서 우리나라 유모차 시장은 이미 수입품이 장악했다. 한 백화점의 아동물품 담당 바이어는 “유모차 매출에서 수입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량 된다”고 전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0년 200만 달러에 못 미쳤던 유모차 수입 금액은 지난해 5300만 달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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