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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현욱 과학 산책

포르노의 유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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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미국 대선에 새 이슈가 추가됐다. 최근 공화당 예비 주자인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이 “오바마 행정부가 포르노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포르노는 ‘뇌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롯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수없이 많다”고 주장했다.

 23일 과학뉴스 사이트 ‘라이브 사이언스’는 이 주장을 일부 비판하면서 전문가 의견을 소개했다. 우선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증거 같은 것은 없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다만 유해성에 대해선 아직도 어느 정도의 논란이 존재한다. 일부 실험에 따르면 젊은 남성을 포르노에 노출시키면 성차별적 태도뿐 아니라 여성에게 고통을 가하려는 성향까지 강화된다. 후자는 여성에게 (실제로는 가짜인) 전기 충격을 가하게 하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이와 반대로 악영향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개별 연구 데이터들을 모아 메타 분석한 결과는 어떨까. “실험 결과만으로 보면 공격성을 키운다는 방향을 가리키지만,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인디애나대의 폴 라이트 교수는 말한다. 무엇보다 “실험실에서 행하는 소규모의 인위적 실험이 실제 생활에 정말로 적용되는지가 문제”라고 텍사스 A&M대의 크리그 퍼거슨 교수는 지적한다.

 실험의 대안은 포르노를 합법화한 나라들에서 합법화 직후 성폭력 범죄율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조사를 여러 차례 수행한 하와이대 ‘성과 사회를 위한 태평양 센터’ 밀턴 다이아몬드 소장의 결론은 명백하다. “포르노가 좀 더 널리 퍼지게 된 후 성폭력 범죄율은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르노는 성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의 남성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준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자위를 통해 성적 흥분을 해소하고 나면 밖에 나가서 뭔가 불법적인 행동을 할 흥미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시스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직 없으며, 다른 사회적 요인이 범죄율 하락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포르노가 만연하게 된 사회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자신들에 가해지는 성폭력을 신고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라이트 교수는 지적한다.

 결정적으로 보통 남성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위험한 성향의 남성에게는 불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여성에 대한 적개심, 자아도취적 성격, 여성에게 권력을 휘둘러 만족을 얻는 성격 등이 위험 성향에 포함된다고 UCLA대의 연구원 닐 맬러무스는 말한다. 기존의 실험들이 서로 상충되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대상자들의 위험 성향이 각기 다른 탓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