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내가 결핵이라고? 기침 한번 한 적 없는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배영길(가명·70·남·서울 강북구)씨는 고혈압에 퇴행성관절염을 앓다가 지난해 결핵에 걸렸다.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몸속에 잠복해 있던 결핵균이 활동해서다. 3주가 지나도 기침을 심 해 방문한 내과에서 결핵으로 진단받았다. 지금은 결핵약을 7개월째 꾸준히 먹으며 치료한 끝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21일 결핵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복십자의원(서울 용산구)에는 결핵환자 수십 명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기실에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 대부분은 고령자다. 이들은 한 달에 한두 차례 병원을 방문해 결핵약을 받아 간다. 복십자의원 김은배 원장은 “예전에는 젊은 사람이 결핵에 많이 걸렸다면 요즘엔 면역력이 약해진 결핵 고위험군(노인·만성질환자·수험생·실직자·자취생)이 많다”고 말했다.

매년 3만6000명 결핵 진단, 2000명 사망

복십자의원에 근무하는 임상병리사 전연정씨가 결핵환자의 피를 뽑고 있다. 결핵환자는 결핵약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받는다. [김수정 기자]

24일은 결핵 예방의 날(세계 결핵의 날)이다. 예전에 비해 결핵에 걸리는 사람은 줄었지만 매년 3만6000여 명이 새로운 결핵환자로 진단받는다. 결핵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사망하는 사람도 2000여 명이나 된다. 웬만한 결핵약은 듣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환자’(일명 수퍼결핵)도 늘고 있는 추세다.

 결핵은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결핵에 걸린 사람이 기침을 할 때 균이 침에 섞여 호흡기로 침입한다.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는 결핵균에 감염되지 않는다. 감염돼도 90%는 큰 문제 없이 생활하지만 바로 결핵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고령으로 몸이 약해지거나 당뇨병·류머티스관절염·신장투석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잠복했던 결핵균이 활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희진 결핵연구원장은 “우리나라 국민의 약 35%인 1500만 명은 결핵균을 몸속에 갖고 있는 잠복 결핵환자”라며 “연령대가 높을수록 잠복 결핵환자가 많은데 50대 이상은 60% 이상”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새로 결핵에 걸리는 사람을 한 줄로 세웠더니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가 2001년 40세에서 2010년 50세로 높아졌다. 김 결핵연구원장은 “젊은 사람이 결핵에 걸리기보다는 잠복 결핵환자가 면역력이 약해져 결핵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류머티스내과 유빈 교수는 “류머티스관절염·당뇨병을 앓고 있는 고령환자는 면역력이 약해 결핵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감염초기 약물치료 실패하면 3~7년 내 사망

결핵을 예방하려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거나 업무강도가 심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결핵에 걸리기 쉽다. 대학 졸업반인 김영은(가명·24·여·서울 용산구)씨는 무리한 다이어트에 취업 스트레스가 겹쳐 결핵에 걸렸다. 결국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신청했다. 김씨는 “결핵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결핵 의심 소견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PC방·노래방처럼 공기가 잘 순환하지 않는 곳도 피한다. 초기엔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 구분하기 어렵다. X선 촬영이나 결핵검사를 통해서만 결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건국대병원 호흡기내과 김순종 교수는 “한국은 여전히 결핵 위험 국가”라며 “3주 이상 기침을 하면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단 결핵으로 진단받았다면 빨리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법은 간단하다. 6~9개월간 약을 잘 먹는 것만으로 완치될 수 있다. 처음 2주간만 먹으면 전염성이 사라져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문제는 얼마나 약을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먹느냐다. 결핵 약물치료는 한 번에 10~15알의 약을 먹는 데다 부작용이 심하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약을 임의로 끊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복용했던 약에 내성이 생기는 다제내성 결핵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핵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 증상이 악화됐을 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결핵 치료성공률은 80%다. 하지만 결핵약 2종류 이상에 내성이 생긴 다제내성 결핵의 치료성공률은 45%, 더 심한 광범위내성 결핵은 25%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결핵균에 내성이 생기면 환자의 절반이 3~7년 이내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내성이 생기면 점점 치료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조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권선미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이럴 땐 결핵을 의심하세요

■ 기침이 3주 이상 계속될 때

■ 가래에 피가 섞여 있을 때

■ 입맛이 없고 평소보다 유난히 피곤할 때

■ 미열이 계속될 때

■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 때

■ 수면 중 식은 땀을 흘릴 때

■ 피를 토할 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