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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 뜻대로 … 렁춘잉 당선 아시아 최고 부자도 힘 못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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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시아 최고 부자인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城)실업 회장도 중국 정부의 입김을 넘지 못했다. 25일 실시된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홍콩 정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소집인(의장) 출신인 렁춘잉(梁振英·58·사진) 후보가 정무사장(행정장관 밑의 정무책임자) 출신인 헨리 탕(唐英年·60)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렁 후보는 선거인단 유효표(1132표) 중 689표(60%), 탕 후보는 285표(25%), 홍콩 민주당 주석인 알버트 호(何俊仁) 후보는 76표를 각각 얻었다. 중국 정부는 렁 후보를, 리카싱은 탕 후보를 밀어 팽팽한 승부가 될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홍콩 행정장관은 각계 대표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하며 임기 5년이다.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 기업의 반발이 컸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친중파인 렁춘잉과 헨리 탕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탕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중국은 탕이 혼외정사를 하고 자신의 집을 호화주택으로 불법 개조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시진핑(習近平·습근평)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에 15일 리카싱을 만나 기업들의 렁 후보 지원을 요청했으나 리 회장은 렁 후보의 반기업 정책을 거론하며 거절했다.

렁춘잉 후보가 간접선거를 통해 25일 홍콩 행정장관에 당선된 가운데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주장하는 홍콩 시민들이 전날 홍콩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시위대는 ‘홍콩은 우리의 주 무대다. (중국공산당) 중앙의 선거 개입에 항의한다’는 대형 구호를 내걸고 행진했다. [홍콩 로이터=뉴시스]

 중국 정부의 선거 개입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발도 거셌다. 홍콩대 여론조사연구소가 24일 오후부터 시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모의선거에서 투표자 22만여 명 중 70%에 이르는 15만4000여 명이 렁 후보에 대한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정부의 렁 후보에 대한 지지였다고 연구소 관계자는 분석했다. 현재 홍콩인 80% 이상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화에 찬성하고 있지만 행정장관 간선제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민심과 동떨어진 중국의 ‘낙점’에 의해 행정수반이 결정되는 데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렁 당선자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그는 공공주택 건설 확대, 빈곤층 지원 등 서민 위주 공약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개선 등 기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공평’의 통치이념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그의 친서민정책은 홍콩 재계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홍콩 민주화 후퇴에 대한 우려도 있다. 렁 당선자는 입법회의 의원 시절 일국양제(一國兩制·홍콩 반환 전의 체제와 자치를 인정하는 제도) 성공을 위해서는 중국 본토의 정책에 협력해야 하며, 언론의 자유 등 시민의 기본권리를 유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렁춘잉=홍콩 태생이지만 아버지는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출신이다. 홍콩 이공(理工)학원(단과대)을 졸업하고 영국 웨스트잉글랜드대에서 상업관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측량과 부동산 컨설팅 분야에서 활동하다 1985년 홍콩기본법(헌법에 해당) 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친중(親中) 행보를 시작했다. 2003년 홍콩민주화 시위 때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등 민주화에 소극적이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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