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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LIFE] 서울 온 에트로 창업자 딸 베로니카 에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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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베로니카 에트로가 지난 15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마련된 패션쇼 무대 앞에서 활짝 웃었다. 그는 에트로 한국 진출 2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다.

“화려한 무늬 옷을 입고 싶은데 부담스럽다고요? 그렇다면 작은 무늬, 작은 소품부터 시도해 보세요. 나중엔 진짜 멋쟁이 소리를 들을걸요?”

 베로니카 에트로(38)는 “화려한 옷을 잘 입어야 멋쟁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당신이 현란한 ‘페이즐리’ 무늬로 유명한 브랜드 디자이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에트로 가족이 아니었어도 질 샌더처럼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브랜드에선 숨이 막혀 일을 못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영국의 패션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의 여성복 수석디자이너로 2000년부터 일하고 있다. 아버지 짐모 에트로(72)가 1968년 창업한 에트로를 지금은 베로니카와 그의 오빠 3명이 함께 이끌고 있다. 첫째 오빠 야코보(50)는 원단과 가죽 담당, 둘째 킨(48)은 남성복 디자인, 셋째 이폴리토(45)는 재무 분야를 맡고 있다. 에트로의 상징은 특유의 ‘페이즐리’ 무늬다. ‘페이즐리’는 공작새 깃털 모양이나 떨어지는 물방울이 휘어진 것처럼 생겼다. 페르시아나 고대 인도 등에서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복잡하고 정교한 무늬에 단청처럼 여러 가지 색상이 조합돼 있는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에트로는 1993년 듀오통상을 통해 한국에 첫선을 보였고, 페이즐리 무늬의 갈색 PVC 가방이 인기를 끌며 유명해졌다. 에트로 한국 진출 20주년을 맞아 방한한 그를 만나 ‘화려한 무늬 소화법’을 들었다.

페이즐리 무늬로 장식한 에트로 클러치. 올 봄·여름 신상품이다.

-에트로 하면 ‘페이즐리’가 떠오른다. 그런데 페이즐리처럼 무늬가 화려하면 보기엔 예쁘지만 정작 사자고 마음먹으면 고르기도 부담스럽고 어렵다. 봄을 맞아 이런 옷을 잘 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궁금하다.

 “화려한 무늬에 익숙하지 않다면 첫 시도는 자잘한 무늬로 해라. 고르는 안목이 부족하니 큰 무늬를 잘못 시도하면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폭이 1㎝ 정도 되는 가로 줄 무늬 안에 작은 페이즐리 무늬가 반복돼 있는 것이 어떨까. 색상도 무난한 색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진한 빨강 같은 것은 피해라. 잘못 골랐더라도 튀지 않는 색이어야 한다. 색상 선택에 영 자신이 없다면 회색이나 검정 같은 무채색 페이즐리를 고르는 것도 괜찮다. 베이지색도 좋고.”

 -이 단계가 익숙해진 중급자 정도라면.

 “당연히 조금 더 큰 무늬에 도전해 봐라. 매우 독특하고 오묘한, 그러면서도 남들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페이즐리 무늬다. 한편으론 우아해 보이기도 하고. 물론 이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블라우스에 페이즐리가 있으면 겉에 무늬 없는 얇은 재킷이나 카디건을 겹쳐 입어라. 반대로 재킷에 페이즐리 무늬가 있다면 받쳐 입는 옷이나 하의는 무늬 없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상급자에게 조언해 줄 것이 있나.

 “상급자라면 당연히 ‘마음대로’가 원칙이다.(웃음) 원래 옷이란 그렇다.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겹쳐 입기를 잘한다. 그러니 ‘화려한 무늬를 마음대로 겹쳐 입으라’고 하는 것 같다. 상급자에게도 어려운 과제다.

 “무늬를 조화시키는 방법은 강약 조절이다. 큰 무늬와

작은 무늬, 진한 무늬와 옅은 무늬, 아주 화려한 무늬와 덜 화려한

무늬 같은 조합을 염두에 둬라. ‘톤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필패의 법칙’ 도 있나.

 “온통 페이즐리로 뒤덮인 상의와 하의·외투를 함께 입는 것이다. 위험한 도전이다. 예외도 있다. 드레스 한 벌에 아주 큰 페이즐리 무늬가 그려져 있다면 마음대로 골라도 된다. 반복되는 페이즐리 무늬로 온 몸을 뒤덮는 게 잘못된 선택이란 얘기니까.”

 -페이즐리처럼 화려한 무늬로 의상 디자인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에트로에 그런 옷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페이즐리 무늬를 사용한 옷은 전체 에트로 여성 의상의 10%에 불과하다. 그리고 요즘은 ‘에스닉’(민족 혹은 종족을 뜻하는 말로 패션과 디자인 분야에선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부족의 토속 문양, 인도나 중동 지역의 전통 문양 등을 사용할 때 쓰는 용어다) 디자인 패션이 다른 브랜드에서도 많이 나오는 추세다. 페이즐리도 원래 중동이나 아시아풍 무늬다. 에트로가 최첨단 유행 무늬의 원조인 셈이다.(웃음)”

 -올 봄·여름 에트로 페이즐리의 특징은.

 “페이즐리의 정교한 디자인을 해체하고 그중 핵심적인 디자인 요소라고 생각한 것만 끌어내 새로 조합했다. 1940년대 이탈리아의 미래파 화가 포르투나토 데페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부분을 확대해 기하학적으로 조형하고 재조합한 것이 많다. 페이즐리를 활용해 이런 작업을 했더니 재미있고 신선한 디자인이 된 것 같다.”

 -올봄 추천하고 싶은 화려한 무늬 옷 하나만 고르라면.

 “하늘색, 분홍색, 옅은 노란색이 오묘하게 어울린 페이즐리 무늬 재킷이다. 조금 편안하게도 보이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무늬 없는 면 니트를 헐렁하게 걸쳐 입고 청바지를 입으면 잘 어울리는 옷이다. 이 재킷으로 차려입은 느낌을 주고 싶다면 시폰처럼 하늘거리는 소재의 블라우스에 통 넓은 바지를 함께 입어라. 훨씬 점잖고 우아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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