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대이란 금융결제망 완전히 막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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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7일 밤(한국시간) 은행 간 자금이동 중개 시스템인 ‘세계 은행 간 금융통신협회(SWIFT)’망이 이란 은행과 관련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란과 연결된 ‘길’(망)이 차단된 셈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한 고객이 환전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지난 토요일(17일) 밤 각 은행의 국제업무팀에선 “결국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이 흘렀다. 국제 금융 결제를 처리하는 ‘세계 은행간 금융통신협회(SWIFT)’망에서 이란 중앙은행 관련 결제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협의해 유럽연합(EU)이 관보에 SWIFT망 차단을 밝힌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미 의회가 이란을 제재하는 ‘국방수권법’을 의결한 후 나온 가장 강력한 경제적 제재다.

 지금도 이란 은행에 대한 개별 거래는 막혀 있다.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를 막은 셈이다. 그래도 우회하는 차가 있자 결제망을 차단해 국도·지방도까지 막아 버린 것이다. 앞으로 더 옥죌 가능성이 크다.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반(反)이슬람 정서를 가진 유대인 조직과 자금의 힘은 막강하다. 게다가 ‘실업에 비해 유가 상승이 미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보도 까지 나왔다.

 결제망 차단은 국제 유가에 바로 반영됐다.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1.9% 오른 배럴당 107.06달러까지 올랐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이 “공급이 달리면 사우디가 보충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역부족이었다.

 한국 기업과 은행도 큰 불편이 예상된다. 한국은 현재 이란 중앙은행이 우리·기업은행에 개설한 원화 계좌를 통해 수출입 대금을 정산하고 있다.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사 등이 이 계좌에 수입 대금을 넣으면, 이란에 수출을 한 업체가 이 계좌에서 원화로 대금을 빼가는 방식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원화가 국경을 넘어 오가는 형태는 아니지만 SWIFT망이 차단되면 보안 문제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재 강도를 더 높여 어떤 형태의 결제도 어려워지면 수출 기업은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진다. 한국 기업은 연간 70억 달러어치를 이란에 수출하며, 이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유가가 10%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1% 뛴다. 소비자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셈이다. 한국은 지난해 이란으로부터 전체 원유 수입량의 9.4%에 달하는 8718만 배럴을 들여왔다.

 한편에선 SWIFT망 차단으로 이란 제재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종의 공용 인프라인 결제망을 미·유럽이 일방적으로 차단하면서 생긴 국제적 반발이 오히려 국제 공조를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도와 중국은 금으로 원유 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조의 균열이다. 한·미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문가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연세대 문정인(정치외교학) 교수는 “미국의 ‘예방적 제재’를 위해 우리가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국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SWIFT망 차단의 영향이 불가피하지만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유가가 급등하면 비상 대책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은행간 금융통신협회(SWIFT)

전 세계 은행의 금융 결제를 처리하는 국제 통신망. 미국과 유럽의 대형은행을 비롯해 전 세계 210여 개 금융사 거래를 중개한다. 한국의 은행도 국제적인 금융 결제를 이 망을 통해서 하고 있다. 송금, 외화자금 매매뿐 아니라 관련 메시지 교환도 이 망을 통한다. 하루 처리 건수는 1800만 건에 이른다. 비영리법인 형태로 1973년 설립됐으며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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