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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초록 검색창 만든 조수용 "우리집 화장실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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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네모난 창. ‘검색=네이버’라는 강력한 상징. 가상세계에 무형으로 존재하던 네이버의 정체성은 단순한 비주얼을 통해 손에 잡히는 브랜드가 됐다.
조수용(38)은 검색창 ‘그린 윈도’를 만든 이다. 네이버 서비스의 UX(User Experience), 사무실 디자인, 제품 개발, 사옥 ‘그린 팩토리’ 건축까지.
그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미디어 권력 NHN의 브랜드를 완성했다. 대학(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을 마치고 프리챌에서 IT기업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3년 NHN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비주얼만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네이버의 거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 2010년 ‘그린 팩토리’ 완공으로 그는 NHN에서의 8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내 브랜드를 마음대로 매니징하고 싶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디자인’ 회사 JOH를 창업했다.
국내에 전례 없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거대 브랜드를 총괄했던 그를 두고 얼마 전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브랜드의 대가’라고 언급해 새삼 화제가 됐다. 브랜드와 디자인의 시대. 그에게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지,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지’ 물었다.

환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를 따라 놓인 커피 테이블과 한 명씩 쏙 들어가는 독서실 같은 사무실, 커다란 각설탕을 띄워 놓은 듯한 대표의 방. JOH의 사무실은 언뜻 카페처럼 보였다. 그는 “카페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 작아도 내 방을 갖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본능을 쫓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를 완성하는 주관과 철학
JOH 브랜드의 첫 작업은 잡지였다. 한 권에 브랜드 하나만 파고드는 ‘매거진 B’. 4호째 발행하면서 가방 ‘ 프라이탁’, 신발 ‘뉴발란스’, 캠핑용품 ‘스노우피크’, 만년필 ‘라미’를 다뤘다. 잡지는 창업자 인터뷰를 하고, 생산 현장을 찾아간다. 제품을 소개하고, 사용자 인터뷰도 한다. 일종의 브랜드 다큐멘터리인데, 그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의 단서가 담겼다.

-인터넷 전문가였다. 왜 ‘종이 매체’로 회귀했나.
“웬만한 건 다 볼 만큼 좋아한다. 잡지나 주말판 신문의 깊이가 좋다. 인터넷은 얕고 책은 사놓고 안 읽는 것도 많다. 그런데 점점 색깔은 사라지고 광고 소식지 같은 잡지가 많아진다. 이런 식이면 버림받을 것 같아서 잡지의 맛이 살면서 나중에 꺼내볼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었다.”

- ‘매거진 B’의 B는 브랜드의 B인가.
“브랜드면서 균형(Balance)이다. 우리 관점으로 좋은 브랜드를 하나씩 선정한다.”

-어떤 관점에서 좋은 브랜드인가.
“호감 가는 브랜드의 기본은 세 가지다. 실용성, 아름다움, 가격. 하나만 무너져도 나쁜 브랜드다. 철학까지 붙으면 완전체가 되는데, 이때는 기본 하나가 무너져도 설 수 있다. 어떤 브랜드가 너무 비싸도 기꺼이 사는 경우다. 브랜드의 생각과 가치관이 중요한 이유다.”

-뉴발란스는 스티브 잡스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세상엔 어마어마한 기업만 있는 게 아니라 소신을 갖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있다. 들여다보면 같은 코드를 갖고 있다. 사람의 본능에 대한 주관을 잃지 않는 거다. 자본게임으로 승리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사람의 본능에 대한 주관이라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연을 좋아하는 것,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 이런 밑바닥의 본능이다. 이런 보편타당성을 잡아내는 데서 이미 결론이 난다.”

-구체적으로 풀어봐라.
“예컨대 오피스 디자인을 한다. 흔히 설문조사를 하는데, 사람은 자기 경험 안에서만 생각한다. 평생 본 사무실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소비자 조사는 필요없다. 디자인을 투표로 결정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사람에게 숨겨진 보편타당한 정서를 발견할 자신이 있다는 거다. 어떤 차를 타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안 물어봐도 알 수 있다. 소비자 조사라는 건 책임회피다. 데이터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잘못돼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한국에선 브랜드의 개념이 왜곡돼 있다. 명품 브랜드처럼.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바로잡힐 거다. 브랜드는 사실 비즈니스와 같은 뜻이다. 지금은 기계를 빨리 돌리고 싸게 납품해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브랜드는 모든 영역의 합, 경계는 없다
그는 최근 삼성카드 숫자카드 프로젝트를 마쳤다. 대림산업과는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JOH 자체 브랜드 운영과 별도로 하는 외부 브랜드 디렉팅이다.
-금융사·건설사와도 일한다. 하는 일이 많고 서로 관련도 없어 보인다.
“요리를 잘하거나 집안 대대로 비법이 있어야 레스토랑을 연다. 예전 패러다임이다. 지금 소비자는 업종을 구분하지 않는다. 브랜드에 대한 느낌의 합을 가질 뿐이다. 예컨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인테리어·메뉴판·음식·서비스 등 모든 것의 영향을 받는다. 소비자에게 닿는 느낌에서 각 영역은 하나로 섞인다. 소비자가 원하는 느낌의 큰 틀을 만들고 구현할 사람을 찾으면 된다.”

-전문 영역은 없다는 건가.
“그렇다고 본다. 예컨대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내게 주거를 연구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난 궁극의 목표를 말하겠다. ‘이런 데 살고 싶다’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주는 것. 나도 소비자로서 주거 경험이 있고 ‘좋은 주거’에 대한 느낌을 알고 있다.”
그의 회사엔 건축·그래픽디자인·마케팅·미디어·요리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22명이 있다. 그는 “우리가 왜 모였는지 공감대가 확실하다면 융합해 브랜드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원하는 바가 뚜렷할 때 영역 구분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전공은 있다. 총괄하려면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습득하나.
“내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은 대상을 이해하는 거다. 많이 봐서 어떤 게 좋은지 아는 게 첫 단계다. 알아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단계가 오면 그때 일을 맡는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걸 바탕으로 디자인 중에 찾고 가져다 붙여서 브랜드의 느낌을 구현해 낸다. 카피라면 카피다. 이게 브랜드에 대한 나의 창의적 접근법이다.”

-흔히 생각하는 창의와 개념이 다른데.
“창의성은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 때 필요하다. 그런데 창의라는 말에 사로잡혀서 기발해야 하고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지에 그려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창의성은 디자이너나 당신 같은 사람의 몫이 아닌가.
“확고한 가치관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건 오너만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 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거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잘해 주세요’라고 부탁받으면 ‘어떤 게 잘하는 겁니까’ ‘당신 브랜드는 뭡니까’라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디자인·브랜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의 룰이 있고, 그걸 헤쳐나가는 건 아무나 못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처럼 브랜드를 책임지는 주관이 있을 때 파괴력 있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 집은 가치관의 결정판

NHN에서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사옥 건축이었다. ‘그린 팩토리’는 2010년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 ‘레드닷 어워드’에서 5개 부문 본상을 받았다. 웹 공간을 디자인한 그의 종착지가 현실의 건축이었다는 것에 대해 그는 “도구가 다를 뿐 공간 경험이란 면에서는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공간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다. 공간 속에 들어간 사람이 그 일부가 돼 숨쉬고 돌아다니며 느끼는 공감각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디자인이다.”

그에게는 사무실 디자인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대부분은 “좋은 디자인의 사무실은 없다”며 돌려보낸다. 이유는 그가 강조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애플 사무실도, 구글 사무실도 좋지만 안에 담긴 가치관은 다르다. 사무실 디자인이란 어떻게 일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는 가치관의 문제다.”

그가 그 “가치관의 결정판”이라고 꼽는 게 바로 집이다. 집을 짓는 것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가치관을 구현하는 것이란 얘기다.

그도 최근 아파트 생활을 접고 판교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그에게 아파트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도 틀에서 벗
어나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산다면서 고민 없이 아파트처럼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는 질문의 꼬리를 이어 답을 구했고 가치관대로 집을 지었다. “편견 하나 없이 인간미 철철 넘치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관에서 신을 벗고 처음 만나는 공간은 두 아들의 방. 흔히 1층엔 거실·주방을, 2층에 방을 배치하지만 그는 둘을 맞바꿨다. 안방은 침대만으로 꽉 찬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때만 필요한 방이 클 이유가 없어서”다. 2층의 주방과 거실은 구분 없이 탁 트였다. 주방은 집의 주인공이다. 높은 천장 아래 커다란 오픈 키친을 뒀고, 굳이 따지자면 카페처럼 작은 테이블을 여럿 둔 공간이 거실이다.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인생을 살 것인가” 깊이 고민했다는 그가 ‘식구(食口: 밥을 같이 먹는 사람)’라는 말에 방점을 둔 결과였을 것이다. 소파와 TV 같은 ‘필수품’은 없다.

대신 어느 집에도 없는 것이 있다. 화장실의 남성용 소변기다. “있으면 편하고 좋은데 왜 없을까”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들여놨다. 그리고 테라스와 화장실에 놓인 옅은 회색 ‘크록스’. NHN 시절 “CEO는 옷도 브랜드에 맞춰 입어야 한다”며 당시 최휘영 대표를 데리고 쇼핑에 나섰다는 완벽주의자가 “보통의 고무슬리퍼를 쓸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다.

그는 구석구석 손 안 닿은 곳 없이 2년을 공들여 집을 지었다. 직접 설계했고, 스위치·전등·선반 등은 출장 다닐 때마다 사 모은 것이다. “집이 가치관의 결정판”이라는 그의 말처럼 조수용의 집은 그의 디자인 가치관을 온전히 보여준다.

“보통 건축가는 덩어리만 만들고 간다. 하지만 집을 구성하는 요소엔 건축·가구·조명·패브릭 등 다양한 것이 있다. 경계 없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느낌의 합을 만드는 디자인, 그게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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