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현대건설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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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이 3일로 예정된 퇴출 대상 부실기업 발표를 앞두고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지난달 31일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올들어 네번째 자구계획을 발표한 지 보름도 안돼 채권단으로부터 실현 가능한 추가 자구방안을 내놓도록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특히 3일에 만기가 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8천만달러(9백억원 상당)나 된다.

채권단은 현대가 오너의 사재출자 등 강도높은 자구계획을 내놓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 자생력은 있나〓현대건설 관계자는 "채권단이 지난달처럼 한꺼번에 1천여억원의 차입금을 회수하지 않는다면 생존력이 있다" 고 말했다.

현대측은 올해 영업이익이 8천87억원으로, 이자(5천7백50억원)를 내고 이라크 공사 미수금(1천9백억원)을 손실로 계산해도 4백37억원의 흑자가 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부채 규모를 자구안대로 4조3천억원으로 낮출 때 생존이 가능하다" 는 입장이다.

증권업계는 더욱 차갑게 보고 있다. LG투자증권은 1일 현대가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적정 부채를 2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를 위해 현대는 5천억~1조원 규모의 채권단 출자전환과 2조원 정도의 이자상환 유예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현대가 10월 말까지 이행한 자구계획은 약속한 1조6천4백30억원 중 7천5억원(46.2%)에 불과하다.

◇ 채권단은 왜 1차 부도를 냈나〓현대는 통상 1차 부도 사실이 공개되지 않는 것과 달리 지난달 31일 증시에서 현대건설의 주식 매매가 중지된 데 대해 정부와 채권단의 경고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현대 관계자는 "채권단이 자구 이행 속도가 느리며 실현 가능한 추가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경고하기 위해 대출금을 회수한 것 같다" 고 말했다.

정부는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방침은 정했으며, 버릴 것은 버린다" 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은행 등 채권단도 자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건설을 특별대우할 여지가 없다" 며 "채권단 전체가 의견을 조율해 현대건설의 부도 위기를 막아줄 처지가 못된다" 고 말했다.

◇ 현대의 대안〓현대는 서산농장을 담보로 3천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채권단에 요청하는 한편 1천억원대에 이르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계열사 보유지분을 팔아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서산농장 처리는 현대.정부.채권단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대는 정부가 공시지가인 3천4백억원에 사주거나 채권단이 담보로 받아 3천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업기반공사를 통해 공시지가의 66%인 2천2백억원대에 사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농지는 담보 가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는 또 鄭회장이 현대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그룹 계열사 주식 가격이 워낙 낮아 효과는 미지수다.

현대는 현대증권.투신.투신운용의 매각과 이라크 공사현장의 미수금 회수가 계획대로 성사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성사되면 미국 AIG 금융그룹(10억달러)과 유럽계 은행에서 1억7천만달러가 들아와 숨통을 틀 수 있다.

그러나 AIG가 정부에 자금 지원 등 여러가지 전제 조건을 요구했고, 해외공사 미수금도 어음 할인율을 더 깎는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건설은 급한 김에 자동차.중공업 등 형제 계열사와 성우그룹 등 친족기업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요청할 움직임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이 형제간 화합을 적극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며 "자동차.중공업은 물론 성우.KCC.한라 등 친족기업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도 정몽헌 회장이 빨리 귀국해 직접 나서든가, 집안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주선해야 하는데 실현성이 희박하다.

◇ 살려야 하나, 퇴출시켜야 하나〓삼성경제연구원의 박재룡 연구원은 "현대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개혁이란 명분으로 퇴출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국내 건설업계의 대외 신인도는 급락할 것" 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일부에서 현대 문제는 '일시적 유동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이 믿지 않는다" 며 "자생력이 없다면 아무리 큰 회사라도 원칙대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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