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칼 뽑아든 경찰의 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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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우
사회부문 기자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면 경찰서장이 검사의 친척을 수사하던 부하들을 ‘원산폭격’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검사가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경찰서장은 수화기를 부여잡고 “분부대로 하겠다”며 절절맨다. 최근까지 검·경은 이렇듯 상하관계였다.

 경남 밀양경찰서의 한 ‘기개 있는’ 경찰관이 자신을 지휘하던 검사를 고소한 사건도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경찰 간부는 “나는 관행에 젖고 용기가 없어 검사를 고소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며 그 경찰관을 치켜세웠다.

 경찰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사건이기는 하지만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 등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검찰이 검사 고소 사건을 경찰청 본청에서 수사하지 말고 관할 경찰 관서로 내려보내라고 하면서 한 방 먹은 모양새지만 경찰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장사다.

 경찰이 판·검사를 특별대우하지 않겠다는 건 옳은 방향이다. 일반 국민은 경찰이 부르면 열 일 제쳐놓고 달려가야 하는데 판·검사는 서면이나 전화로 자기 입장만 설명한다면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찰과 갈등을 빚어오던 경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 앞의 평등’을 외치는 배경이 의문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경찰의 관심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 조사 방식과 조직의 위상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면 국가기관 간의 힘겨루기가 된다. 국민은 공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경찰이 검찰에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그동안 경찰이 많이 바뀌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저축은행 수뢰 혐의로 구속됐고, 한 경무관급 해외 주재관은 수년간 억대 금품을 받아온 의혹을 받고 있다. 절도범들에게서 수시로 돈을 받고 사건을 무마해 준 경위도 있었고, 음주운전 단속을 맡은 경찰관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검사 고소 사건과 기소청탁 의혹 수사는 경찰 조직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경찰이 속 시원히 진실을 밝혀주면 그만큼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판사를 소환할 거다’ ‘검사를 강제구인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만 놓다가 이도 저도 아닌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면 ‘경찰이 그렇지 뭐’라는 냉소와 조롱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