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사외이사 물갈이 또 물 건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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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은행권 사외이사 선임이 ‘물갈이 없는 돌려막기’로 귀결됐다. 이달 말 주총 때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유임됐고 몇 안 되는 빈자리는 내부 관계자로 주로 채워졌다.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파견 논의와 우리사주조합들이 독자 추천 시도 등은 무위로 돌아갔다. “경영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경영진이나 다른 사외이사들과의 친분이 중시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지주사는 월말 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18명 중 15명을 재선임하기로 했다. 물러나는 사람은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인 조정남 SK텔레콤 고문과 김각영 전 검찰총장,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등 3명뿐이다.

이들도 70세 나이 제한(조 이사)이나 5년 임기 제한(김·정 이사)에 해당돼 연임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경우다.

 KB금융지주는 이경재 이사회 의장 등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 5명을 오는 23일 주총 때 전원 재추천하고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을 신규 선임하기로 했다.

29일 주총을 하는 신한금융지주도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임기가 다된 사외이사 4명을 유임시킬 방침이다. 우리금융지주는 방민준 전 뉴데일리 부사장 등 사외이사 4명의 임기를 1년 연장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4대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 교체율은 사실상 제로”라며 “사외이사의 역할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상반된다”라고 말했다.

 신규 선임된 인사 상당수도 내부 관계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다. 하나금융은 신임 이사로 관료 출신인 박봉수 전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이상빈 한양대 교수, 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황덕남 서울법원 상임조정위원을 추천했다. 13일 주총을 한 외환은행은 천진석·김주성·방영민씨 등 7명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천 이사는 하나대투증권과 충청하나은행 대표, 김 이사는 하나은행과 하나금융의 사외이사 경력이 있다. 방 이사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에서 윤용로 외환은행장과 같이 근무했다.

 금융권은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끝났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경영진을 감싸준 사외이사를 지주사들이 쉽게 바꿀 수 있었겠느냐”며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구조론 물갈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는 사람보다 주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사외이사 스스로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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