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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장전된 권총 꽂고 부산 도심 활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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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찰이 러시아 선원 A씨(22)로부터 압수한 러시아제 MP-654K 가스 발사식 권총과 탄창. [부산 영도경찰서 제공]

부산에 입항한 러시아 선원들이 대낮에 총알이 장전된 총기를 휴대한 채 도심을 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는 25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 테러집단의 국내 잠입이 우려되는 가운데 외국인 선원에 대한 출입국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11일 오후 4시 부산시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경비실. 러시아 선원 3명이 상륙허가증과 여권을 보여주자 경비실 직원은 선원들의 얼굴과 사진만 비교해 본 뒤 입구 문을 열어줬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선박 엔진 수리를 위해 입항한 5600t급 컨테이너선의 선원들이다. 이들 가운데 A씨(22)는 러시아제 가스발사식 권총(MP-654K)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권총을 갖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조선소 측이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가 가방 등에 접이식 기관총을 넣고 왔어도 무사통과해 시내를 활보할 뻔했던 것이다. 조선소 관계자는 “새 배만 건조해 오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 오랜만에 수리할 배를 받다 보니 선원 관리와 보안검색을 자체적으로 해야 하는 규정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 바람에 A씨는 허술한 검색대를 유유히 빠져나와 동료 선원 2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중구 남포동 롯데백화점 광복점 앞에서 내렸다. 택시기사 박모(58)씨는 조수석에 탔다가 내리는 A씨의 뒷주머니에 권총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일행 3명은 국제시장·남포동 지하상가 등 시민 밀집 지역을 돌아다니다 다른 택시를 타고 돌아온 직후인 오후 6시35분쯤 조선소 입구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변 보호를 위해 총을 소지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씨는 러시아를 떠나오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0여만원(한화 가치 기준)을 주고 이 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체포 당시 권총에는 직경 2㎜ 쇠구슬 총알 5발이 장전돼 있었다. 이 권총은 가까운 거리에서 쏘면 살상용으로 사용될 만큼 위력이 크다.

 최강수(54) 부산세관 홍보담당관은 “해당 조선소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1차 문제지만 세관도 관리책임이 있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선박이 국내 부두에 들어올 경우 상륙 허가 여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승무원의 부두 출입 시 소지품에 대한 검사는 세관에서 각각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1995년 관세청이 부산·인천·울산 등 전국 64개 부두에서 외국 배를 수리하는 조선소 등에 대해서는 외국인 선원 등에 대한 출입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승·하선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총기류와 마약류 등 사회에 해를 끼칠 만한 물품이 있는지 준세관원의 신분으로 검사 및 검색도 할 수 있다.

 성정규(43) 영도경찰서 수사과장은 “외국인 선원에 대한 출입 관리가 이처럼 허술하다면 테러나 범죄에 활용될 우려가 있다”며 “출입국 관리사무소나 세관에 보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위성욱 기자

권총 소지 러시아 선원들의 활보

▶ 2월 29일
러시아 국적 5600t급 컨테이너선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입항

▶ 3월 11일 오후 4시
선원 3명 가스 발사식 권총 소지한 채 조선소 경비실 검색 통과

▶ 오후 4시 10분~6시 20분
권총 찬 채 남포동 롯데백화점 광복점과 국제시장, 남포동 일대 활보

▶ 오후 6시 35분
택시로 조선소로 돌아온 선원 3명 잠복 중이던 경찰에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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