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③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 차인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름: 차세주

직업: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 사장

특징: 준수한 외모에 정직한 품성

 여기까진 완벽하다. 그런데 이 아저씨, 조금 더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틈만 나면 연필을 깎는데 그에 대한 집착이 페티시즘에 가깝고, 화가 났을 때 훌라후프를 돌리는 모습은 흡사 킹콩 같다.

 압권은 술에 취했을 때다. 이 잘생긴 아저씨가 킹콩 흉내를 내며 눈알을 굴리더니 터미네이터 같은 표정으로 셔플댄스를 추는 게 아닌가. 참으려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정녕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색소폰을 불던 테리우스, 그가 맞는 걸까.

 차인표(45·사진)가 망가졌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고 신정구(1972~2011) 작가가 기획한 KBS 일일시트콤 ‘선녀가 필요해’에서다. 선녀 모녀 왕모(심혜진)와 채화(황우슬혜)가 날개옷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인간세상에 눌러앉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차인표는 이들 모녀에게 구세주가 되는 차세주(차인표) 역을 맡아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데뷔 20년 만의 시트콤 입문은 꽤 성공적이다.

 사실 그는 모범 연예인의 전형이었다. 봉사활동·기부·공개 입양·탈북자 돕기 등 사회적 활동을 하는 틈틈이 두 편의 따뜻한 장편소설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봉사’ ‘모범’ ‘작가’라는 말들이 주는 울림이 너무 묵직했던 걸까. 매번 본업인 연기에 충실했고, 늘 변신을 시도했지만 대중은 그에게 ‘괜찮게 연기한다’ 이상의 점수를 주지 않았다.

 차인표에게는 억울한 일이었겠지만, 그가 어떤 틀에 갇혀있었던 건 분명했다. 쉽게 말해 항상 ‘폼’이 났던 것. 재벌 2세 역을 맡든, 비열한 남자 역을 맡든 그에게는 폼이 있었다. 심지어 사생활마저.

 그러나 배우에게 전형이 되는 것만큼 두려운 게 또 있을까. 그는 영민했다. 쫄티를 입고 가슴 근육을 튕기며 남행열차를 부르는 차인표라니. ‘테리우스도 집에서는 코털을 뽑는구나’ ‘술에 취하면 망나니 되는 건 다 똑같아’라는 위로를 주며 그는 자신의 틀, ‘폼’을 깨는 데 성공했다.

 버림으로써 취하라고 했던가. 이 시트콤을 통해 인간세상에 내려온 건, 선녀들이 아니라 이 꽃중년일지 모르겠다. 폼 잡기를 내던져 결국 더 폼 나버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