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빨간 밑창'에…" 한 남자의 집착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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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크리스찬 루부땅

#1. ‘빨간 밑창 소송(red sole lawsuit)’. 1년째 이어지는 법정 공방에 붙은 이름이다. 원고는 크리스찬 루부땅, 피고는 이브생로랑(YSL), 혐의는 상표권 침해다. 루부땅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밑창을 YSL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크리스찬 루부땅은 빨간 밑창 아이디어를 고안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피고는 빨간 밑창을 사용해 잠재 고객을 기만하고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이런 주장과 함께 루부땅 측은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YSL 구두의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 YSL은 “루이 14세도 빨간 밑창 구두를 신었고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도 빨간 구두를 신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결정은 기각. “루부땅의 빨간 밑창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패션의 장식적 요소인 색깔을 특정 브랜드가 독점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루부땅은 “색은 브랜드 정체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빨간색이 우리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특정한 곳에 사용된 빨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겠다”며 제기한 항소는 진행 중이다.

YSL은 세계 3대 명품그룹인 PPR에 속한 브랜드다. 크리스찬 루부땅이 최고의 신발 브랜드라 한들 체급 차가 만만치 않은 싸움이다. 루부땅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판부도 ‘빨간 밑창=크리스찬 루부땅’이라는 건 인정했으니, 누가 뭐래도 빨간 밑창은 루부땅의 것이라는 걸 널리 알린 셈이다.

#2. 196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크리스찬 루부땅은 학교에서 세 번 퇴학당하고 12살에 가출한 ‘문제아’였다. 그러나 이때 이미 범상치 않은 소년이었다. 그는 소피아 로렌이 여동생을 소개하는 TV쇼를 보고 학업 중단 결심을 굳혔다는데, 그의 말은 이렇다. “소피아 로렌의 여동생도 12살에 학교를 관뒀지만 뒤늦게 공부해 쉰에 학위를 땄다. 방청객은 그 얘기에 박수를 쳤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 걸 후회할 날이 온다면 그때 그녀처럼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스케치를 시작했고, 카바레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으며 이집트·인도 등을 여행했다. 처음 여성 구두, 특히 스틸레토에 관심을 가진 건 박물관의 안내문을 보고 나서였다. ‘나무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하이힐을 금지한다’는 문구에 그는 “규칙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이 자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1981년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스케치들을 쿠튀르 하우스에 보냈다. 찰스 주르당이 그를 채용했고, 이어 ‘스틸레토의 발명가’라 불리는 로저 비비에의 견습생이 됐다. 이후엔 프리랜서로 샤넬·YSL 등을 위한 구두를 디자인했다.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숍을 연 건 91년이었다. 첫 번째 고객은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 공주 덕에 그는 명성을 얻었다.

제니퍼 로페즈, 마돈나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팬이 됐다. ‘섹스 앤 더 시티’로 슈즈홀릭의 대명사가 된 세라 제시카 파커는 결혼식에서 루부땅을 신었다. 하지만 최고 VIP는 따로 있다. 6000켤레가 넘는 루부땅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로맨스 소설가 대니얼 스틸. 매장 구두를 ‘싹쓸이’하고도 “더 살 수 없어 안타깝다”는, 진정한 매니어다.

#3. “여성은 하이힐을 발명한 자에게 빚을 졌다.”
메릴린 먼로의 말대로 여성에게 구두, 특히 하이힐은 강렬한 유혹이다. 루부땅은 여성에게 구두가 어떤 의미인지 가장 잘 알았다. 그는 “다리를 최대한 길어 보이게 해서 여성을 아름답고 섹시하게 만들기 위해” 구두를 디자인한다. 10cm가 넘는 킬힐의 매력을 부활시켰고, 밑창에 빨간색을 칠해 섹시함을 극대화했다.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뗄 때마다 시선을 잡아끄는 새빨간 밑창. 루부땅은 이를 ‘Follow Me Shoes’라고 불렀다. 아찔하게 도발적인 루부땅의 상징은 모든 여성의 로망이 됐다. 그가 “내 인생의 본질이 빨간 밑창에 들어 있다”며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는 이유다.

올해 크리스찬 루부땅은 20주년을 맞았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5월 7일부터 7월 8일까지 회고전이 열린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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