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평탄한 인생이 정말 있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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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공존

‘야! 너 미친 거 아냐’라는 말, 한 번쯤은 상대방에게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이런 말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말을 뱉고서 곧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미친 거 아냐. 그런 말을 왜 했지’ 하며 머리를 감싸 쥐게 되니 상대방과 나를 미친 사람으로 동시에 만들게 된다. ‘미치다’는 사전적 의미로 ‘정상적이지 않다’이다. 비슷한 말로 흔히 쓰이는 ‘사이코(psycho)’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비정상적인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돼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미치다’와 유사한 단어를 쓸 때 농담이라도 조심스럽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이냐’는 문제는 아직 정답이 완벽하게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증상의 유무와 더불어 그 증상을 가진 사람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기능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함께 판단한다. 이론적이지만 완전히 정신나간 듯한 사람이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상적인 삶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환자가 아닌 것이다. 필자의 클리닉에는 본인이 ‘미친 것 같다’고 호소하며 오시는 분도 있지만 반대로 꽤 많은 숫자가 ‘미치고 싶다’고 호소한다. 하기야 나도 가끔은 미칠 것 같고 때론 미치고 싶다.

프시케, 영혼이라는 뜻

 ‘Psycho’를 파생시킨 원조 단어 ‘psyche(사이키, 프시케)’는 생각과 감정이란 뜻이다. 프시케의 원뜻은 ‘숨’이다. 사람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 거기서 파생되어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시케는 절정의 미녀다, 사람들이 프시케의 아름다움만 칭송하고 미(美)의 신인 비너스를 소홀히하자 비너스가 자신의 아들 큐피드(에로스)를 시켜 저주를 내렸으니,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구혼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은 비너스에게 용서를 받고 사랑의 신인 큐피드와 ‘행복하게 살았더라’란 내용이다.

 프시케는 ‘나비’란 뜻도 갖고 있다. 프랑수아 제라르 작 ‘프시케와 에로스’(1797)란 작품을 보면 프시케의 머리 위에 나비가 사뿐히 날아가고 있다. ‘미친 거 아냐’의 원조 뼈대가 생명을 뜻하는 숨, 영혼을 전달하는 나비, 그리고 저주를 극복한 미녀와 사랑의 신과의 러브스토리라 하니 여기서 미친 것 아냐는 ‘이거 예술이네’라는 느낌마저 든다.

 예술이 인류 탄생과 거의 동시에 시작돼 지금까지 번창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감성적 쾌감 때문이다.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음악은 무엇으로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변화다. 음의 변화, 즉 음의 고저, 강약, 그리고 스피드, 이 세 축의 변화에 여러 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화성학적 변화를 첨가해 수많은 변이를 만들어낸다. 우리 뇌는 그 변이에 깊은 감동과 쾌감을 느낀다.

인생의 고뇌와 창조적 에너지

  작곡가를 포함한 다양한 창조적 예술가의 전기를 보면 일반인들보다 훨씬 빈도가 높게 다양한 정서적 문제를 가진 것이 발견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영국정신의학회지에 발표된 논문 결과가 흥미롭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친척 30만 명을 추적 조사했을 때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 환자 그룹과 그 친척에게서 대조 정상군에 비해 창조적 직업을 가지는 빈도가 150%로 많았다. 감성의 변화를 크게 느끼는 환자와 그 유전적 특성을 공유하는 친척에게서 예술적 창조성이 더 뛰어났다는 이야기다.

 양극성장애는 조울증이라 불리는 것으로 내면의 심해로 깊이 빠지는 우울증(depression)의 시기와 세상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조증(mania) 시기가 반복되는 것이 주 현상으로, 감성 변화의 폭이 정상인에 비해 훨씬 크다. 우울증 시기에 인생의 고뇌와 굴곡을 내면적으로 깊이 경험하고 조증 시기에 이것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한 것일까. 내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병적 증상은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을 넘어서는 비정상적 변이에서 창조성이 기인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치지 않고 산다는 것, 정상 범위에서 산다는 것이 때론 내 스스로의 창조성과 변화의 쾌락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은 ‘평탄 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 본질 자체가 평탄하지 않다. 엄청난 파도와 같이 속도 변화와 고저가 존재하는 변화의 연속이다. 이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잠재울 수 없다면 이 파도를 즐기는 게 어떨까. 가끔은 평탄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마음껏 미쳐 세상의 굴곡을 느껴보자. 거기서 창조적 쾌감을 만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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