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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30m 강정천 사이에 두고 … 보수·진보단체 찬반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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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작된 케이슨(Caisson) 1호가 8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 도착했다. 공사 관계자들이 임시 설치를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무게가 8800t에 이르는 이 케이슨은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제작해 대형 플로팅도크선으로 옮겨왔다. 케이슨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해 상자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바다 지지 지반까지 침하시켜 건설 기초로 이용한다. [제주=최승식 기자]

8일 오후 1시10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강정천변. 폭 30m의 강정천을 사이에 두고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 마을에 들어설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찬성과 반대 측이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이다. 양측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경찰의 제지로 충돌은 없었다.

 이날 강정천 체육공원에선 서울에서 온 서경석 목사 등 470여 명을 비롯해 1500여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해군기지의 정상적인 건설을 촉구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해군기지의 당위성이 적힌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반대를 위한 반대운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국가안보와 제주 지역 발전을 위한 국가정책 사업을 일부 반대 주민과 종북 좌파, 전문 시위꾼들이 불법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해군기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결정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거국적인 차원에서 공사가 정상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 측은 이날 오전부터 주민들과 종교인, 사회운동가 등 100여 명이 모여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일부 반대 측 주민들은 경찰의 봉쇄를 뚫고 체육공원 쪽으로 넘어가기 위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반대 주민들은 “해군이 토벌대(육지 경찰)를 동원해 어머니 젖가슴 같은 구럼비를 깼다”며 침통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4·3항쟁의 상처가 있는 평화의 섬에 미군기지를 지으려고 온갖 불법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난도 쏟아냈다.

 강동균(55) 강정마을 회장은 “주민의 호소나 도지사의 요청을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며 “구럼비 바위는 깼지만 우리는 끝까지 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55·여)씨는 “어릴 때 뛰놀던 구럼비 해안에서 화약이 터지는 것을 보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이라도 주민 여론조사를 해 갈등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발파 작업에 대해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부모와 친척들 간에 사이가 벌어진 일부 주민은 “시원하다”고 말했다. 2007년 해군기지 유치 당시 마을회장이었던 윤태정(57)씨는 “구럼비에 대한 발파 작업과 함께 이곳에 설치할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도착한 마당에 공사 중단이 말이나 되느냐”고 말했다. 강정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54)씨는 “해군기지는 미군기지가 아닌 크루즈 선박까지 드나드는 민·군 복합형의 항구로 안다”며 “정부가 약속했던 강정마을 발전 계획이 추진되면 주민들에게 이로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제주=최경호 기자

갈라진 제주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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