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올라도 집값은 되레 하락

중앙일보

입력

주택시장 침체의 원인은 주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집값 안정심리가 확산하면서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줄고 집에 대한 가치관도 소유에서 사용 개념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 월세가 급증하는 것도 집주인들이 낮아진 집값 상승 기대치를 임대료로 보상받으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 전셋값 올라도 매매값은 제자리〓전셋값 상승→매매수요 증가→집값 상승이란 전통적인 흐름이 깨지고 있다.

올들어 수도권 소형아파트의 전셋값은 매매값의 80~90%까지 올랐지만 매매가는 오히려 내리고 있다.

전세.매매값이 같아도 사려는 이들이 없는 기현상마저 생겼다. 경기도 산본 신도시 주공10단지 16평형은 매매값과 전셋값이 5천9백만원선으로 같다. 인천시 산곡동 우성5차 24평형은 전셋값이 매매값을 웃돈다.

이럴 땐 "사자" 수요가 늘어야 하는 데도 거래는 뜸하다.

주택공사 주관수 선임연구원은 "집값이 오르지 않고 팔리지도 않으니, 돈을 묶어두기보다 언제든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로 살겠다는 심리가 퍼지고 있기 때문" 이라고 풀이했다.

◇ 내집마련 의식의 약화〓회사원 박남진(31)씨는 일산 신도시 25평형 집을 팔아 고양 화정지구 아파트 전세로 옮길 계획이다.

朴씨는 "집에 잠기는 돈이 아깝다" 며 "당분간 집살 생각이 없다" 고 말했다. 내집 마련을 평생의 꿈으로 삼던 전통적인 주거관이 바뀌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는 '거주할 집만 있으면 된다' 는 사고가 폭넓게 자리잡아 선진국형 주거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제일기획이 지난 6월 성인 남녀 3천5백명을 대상으로 벌인 '라이프 스타일 조사' 에서도 인식변화를 엿볼 수 있다.

조사 결과 '부동산 투자가 재산증식의 가장 확실한 방법' 이라고 답한 사람은 22.7%로 1992년(34.9%)에 비해 12.2%포인트나 떨어졌다.

◇ 월세확산도 같은 맥락〓월세 확산도 우리 주거문화가 변하고 있는 단적인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요즘 세입자들의 거부감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주춤해지긴 했으나 정부가 월세 이자율 기준을 마련할 경우 큰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

㈜PIR 이현 이사는 "주택 수요자는 소유보다 이용을 원하고 집주인은 고정수익을 선호하는 추세가 보편화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