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져도 월세 짭짤 … 다주택자에 집 팔지 말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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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턱 앉자마자 말한다. “현금 30억 갖고 있소. 좋은 것(투자대상) 있으면 가져와 보시오.” 금융사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찾는 옛날 부자들이 그랬다. 요즘은 아니라고 한다. “조찬모임에서 만난 반도체 부품업체 사장이 그러는데 주문이 밀려들어 감당을 못한다더라. 반도체 경기가 정말 좋아지는 것이냐? 그럼 삼성전자 주식을 사야 할까? 아니면 IT업종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은가? 반도체 호황에 올라탈 최선의 방법을 알려달라.” 정복기(48·사진) 씨티은행 프라이빗뱅크 대표가 전하는 요즘 부자들의 모습이다. 정 대표는 “부자들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부지런하고 똑똑해졌다”고 말한다. “저금리와 금융위기가 부자를 훈련시켰다”는 것이다. 씨티 PB는 자산 100억원 이상 고객을 상대한다.

정 대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생각은 부자처럼 하고, 두세 배 더 부지런히 노력하면 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며 “대박 환상은 쪽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그는 “부자들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들이 어떤 투자에 관심 갖는지를 꾸준히 지켜보고 그들처럼 투자하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한 해의 목표수익률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요즘 부자들의 목표는 10% 안팎이라고 전했다.

-연초 주가가 급등했다. 부자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지난해 3분기 이후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직접투자 비중을 높여 놓은 고객이 많았다. 연초 증시를 대형주가 주도했는데 부자는 본래 대형 우량주를 선호한다. 적지 않은 고객이 꽤 큰 수익을 냈다. 다만 코스피지수가 2000을 회복하자 이익을 실현해 ELS(주가연계증권) 등으로 옮기는 고객도 있다. 주식투자로 1년 내내 돈을 벌 수는 없다. 들어갈 때와 쉴 때를 알아야 한다.”

 -부자들은 늘 시장 흐름을 잘 예측하나.

 “물론 부자도 손실을 입을 때가 있다. 다만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부자들은 손절매를 할 줄 안다. 예를 들어 코스피지수 1900에서 주식에 투자해 5% 손실이 났다. 앞으로 손실이 20%로 더 늘어날 것 같으면 부자는 과감히 털 줄 안다. 일단 정리하고 기다렸다가 지수가 1600 가면 그때 다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은 ‘본전 생각’에 그렇게 못한다. 계속 들고 있다가 결국 마이너스 40%까지 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재테크의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간극이 벌어졌다고 느끼면 무리수를 두고, 편법적인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면 손해를 본다. 둘째는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하는 방식에 묻어가라.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항상 반대편에 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하고, 골방에서 혼자 인터넷 검색을 해 얻은 지식을 토대로 재테크를 하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

 “‘1년에 몇 %의 수익을 낼까’를 먼저 정하는 게 좋다. 한 친구가 “연 30% 넘는 수익을 내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 비상식적인 수익을 원하는 친구에게는 해줄 일이 아무것도 없다. 3000만원으로 재테크를 시작할 때 매년 10%씩 번다면 복리 효과로 7년2개월이면 두 배인 6000만원이 된다. 또 7년이 지나면 1억2000만원이 된다. 중산층 이하 서민일수록 복리의 마술을 더 누려야 한다. 한 방에 두 배를 만들려는 사람은 70년이 지나도 3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 못 만든다고 장담한다.”

 -본인 자산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ELS 비중이 가장 높다. 금융위기 이후 이렇게 바뀌었다. 주식은 적립식 펀드로만 한다. 일부 채권에도 투자한다. 매달 엑셀파일로 투자 결과를 정리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정리해서 성과를 아내에게 보고한다. 적립식 펀드 투자를 할 때 매달 같은 날 자동이체를 하기보다는 자유적립식으로 월 중 주가가 하락한 날을 택해 일정액을 넣는 게 수익률이 더 좋다. 연 수익률을 1~2% 더 높일 수 있다.”

 -주가는 더 오를까?

 “작년 4분기부터 고객에게 강세장에 대비하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주식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해다. 지난해 고점인 코스피지수 2228을 돌파할 것이라 믿는다. 세계경제를 억눌렀던 요인들이 해소 단계에 접어들었고, 핵심인 미국 경제지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 재정위기 등 변동성이 내재된 상황이어서 어떤 종목이 오를지를 맞히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인덱스 펀드 등 지수 상승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걱정스러운 복병을 꼽는다면.

 “가계가 부동산과 부채에 발목을 잡혀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동성을 풀어도 서민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부동산시장이 더 오래 침체되면 정부가 아무리 경기부양책을 써도 소비가 늘지 못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대출받아 산 아파트는 어떻게 할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집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이자가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처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감내할 수준이면 그래도 보유하는 편이 낫다. 특히 다주택자인 부자 고객에게는 팔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집값은 떨어지고 거래도 안 되지만, 전월세 가격은 좋다.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보유하면서 월세로 수익을 얻도록 조언한다. 현금흐름에서나 수익률 측면에서나 월세만 한 게 없다.”

정복기 대표는 …

22년 경력의 1세대 프라이빗 뱅커다. 1990년 한국 씨티은행에 입사해 PB를 시작했다. 2002년 삼성증권으로 옮겼다가 2010년 씨티로 돌아왔다. 연예인이 아니면서 연예대상을 받은 PB이기도 하다. 삼성증권 시절 지상파 방송 주말 오락프로그램의 ‘경제야 놀자’ 라는 코너에 고정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2007년 방송사 연말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던 것. 그 인연으로 연예인 고객도 많다. 숭실대 PB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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