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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한국문화원장의 하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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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벌써 4, 5년 전의 일이다. 영국에서 1년간 연수할 때 런던 시내에 나가면 기분이 으쓱하곤 했다. 어렵지 않게 삼성이나 LG의 휴대전화·TV를 파는 매장을 발견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당시만 해도 한국은 여전히 ‘전자제품의 나라’인 듯했다. 영화를 빼면 한국의 문화는 알려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가령 2008년 7월 소설가 이청준의 타계 소식은 한국 유학생들만의 뉴스였다. 셰익스피어의 나라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해 2월 숭례문이 방화로 타버렸을 때는 좀 달랐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너희 나라 국보 1호가 불에 타버렸다며?”라며 관심을 보였다. 한 일본인 동급생은 숭례문 화재가 인터넷 포털 ‘야후 재팬’의 뉴스 검색 1위에 올랐다고 알려줬다. 민망했다. 반면에 영국이나 유럽 친구들은 아예 그런 뉴스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무관심을 차라리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 헷갈렸다. 그래서 지난해 한국의 대중가요 ‘K팝’이 유럽에서 불러일으킨 열풍은 신선했다.

 요즘 문화체육관광부는 분주하다. 한류를 지속적인 문화현상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내놓았다. 대규모 아리랑 페스티벌을 해외에서 열자는 것부터 광주광역시의 아시아문화전당을 문화교류의 거점으로 활용하자는 내용까지 망라돼 있다. 이를 위해 문화부는 올해 540억원을 투입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온기의 이면에 냉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파리의 한국문화원 이전·확장 문제다. 1980년에 문을 연 문화원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갈수록 국격(國格)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주택가 아파트의 반지하층에 세들어 있는 데다 그나마 비좁고 낡았다고 한다. 문화부는 몇 해 전부터 새 건물 마련을 위한 예산을 요청했지만 정부의 예산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려 번번이 헛물을 삼켰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 심각했다. 지난주 문화부는 전 세계 31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문화원장·문화홍보관 41명을 불러들였다. 한류 발전전략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파리의 이종수(49) 문화원장도 들어왔다. 그는 과거 한 일간지의 파리 특파원이었다. 이 원장은 “기자일 때는 몰랐는데 들어와 일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반지하층 원장실은 우선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 해서 전화가 오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겨 받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이 늘어났지만 이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00명가량을 돌려보냈다. 그나마 수강생 일부는 문화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고등학교 교실을 빌려 가르친다. 현재 한국어 강좌 초급반에는 파리 13대학 장루 살즈만 총장도 등록해 있다고 한다. 그는 파리의 친한파 인사로 꼽힌다.

 한국 문화에 대한 파리의 관심을 잘 살렸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는 번듯한 건물도 분명 있어야 한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