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이후 삶 극적으로 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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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영예인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면 상을 받은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 이 문제에 대해 독일 주간 신문 디 차이트 최신호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면 수상자의 삶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노벨상을 수상한 자연과학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노벨상 수상자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졸지에 공인이 되고 만물박사가 된다.

9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생물물리학자인 에르빈 네어는 "노벨상 수상자는 세상만사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네어 박사는 "노벨상을 타고 나니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문의들이 갑자기 들어오고 권위있는 답변을 요구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78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스위스의 유전학자 베르너 아르버 박사도 "세상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으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런 유명세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93년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로버츠 박사는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연예인과 정치가들을 만나게 되고 다닐 데가 많아져서 기쁘다고 기탄 없이 털어놓는다.

그러나 유명한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유명세를 적극 이용해 자기 연구분야를 선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8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잭 슈타인베르거는 특히 언론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공적인 자리에 나서서 각광을 받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8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클라우스 폰 클리칭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자기분야를 세상에 널리 알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역할을 제법 맡아왔다. 그는 이런 고충을 이렇게 표현했다.

"물리학을 공부하면 노벨상을 받게 된다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벨상을 타면 보람있는 일을 하기가 쉬워진다. 지난해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독일 출신의 귄터 블로벨은 9억원 이상인 노벨상 상금을 동독 지역 드레스덴의의 문화유적인 `프라우엔 교회'' 재건사업에 기부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공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나타나는 삶의 변화중 부정적인 것도 적지 않다. 노벨상 수상이 주는 영광과 권위에 도취돼 성격이 나쁘게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노벨상을 받으면 자기중심적이고 과대망상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

공동 연구로 공동 수상한 사람들의 경우 노벨상을 받자마자 심하게 싸우고 헤어진 사례도 있으며 어떤 수상자는 인간과 자연의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놓겠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는 노벨상 수상자가 보일 수 있는 거만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로버트 갤로우라는 에이즈 연구자가 그의 학설을 비판했을 때 멀리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갤로우는 일단 노벨상을 받고 나서 발언해야 한다"

노벨상을 받는 순간 수상자는 명예의 정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후의 연구 작업에 힘이 빠진다. 특히 이같은 현상은 너무 젊은 나이에 상을 받을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수상자들은 수상 이후에 강연과 강의에 쫓겨 연구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 수상자는 "상을 더 늦게 받았더라면 더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47세에 노벨상을 받은 네어 박사는 "노벨상을 받으면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 물론 더 받을 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자연과학자는 한명도 없는 것을 보면 노벨상은 역시 탐나는 상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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