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현대건설 초읽기 속 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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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의 추가 자구계획은 출자전환을 둘러싼 시비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지난 8월 13일 현대가 발표한 자구계획 1조5천억원에서 5천억원 정도의 차질이 예상되자 채권단이 이 부분만큼의 출자전환 카드를 내밀었고, 이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 현대측이 추가 자구계획을 낸 것이다.

정부로선 4대 그룹 계열사를 지원한다는 특혜 시비를, 현대로선 출자전환에 따른 경영권 위협을 피할 수 있고 외환은행으로선 가장 큰 거래기업인 현대건설을 살림으로써 동반 부실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채권단의 출자전환이나 신규 자금지원은 백지화됐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빚만 줄인다면 영업활동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독자 생존이 가능한 회사" 라며 "추가 자구계획만 충실하게 이행되면 출자전환이나 신규 자금지원이 필요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추가 자구계획의 현실성이다. 현대중공업 지분 매각은 기존 자구계획에서 매각 방식을 바꾼 것이다.

새로운 내용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 3%를 현대건설의 외자유치에 담보로 내놓고▶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비상장사인 현대정유 지분(5백60억원)과 현대아산 지분(4백50억원)을 매각하고▶鄭전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건설의 회사채(1천7백억원)를 출자전환하는 것 등이다.

8.13 자구계획보다 현금화 가능성이 큰 방안이 추가됐다. 그러나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보유지분을 담보로 한 외화차입 규모는 확정하지 않았다.

또 채권단과 현대건설로선 현대건설이 발행할 8백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서 매입해주길 원하고 있으나, 양측은 즉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충남 서산농장 매각은 거론하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제외했다고 채권단 관계자가 전했다.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위원장은 17일 오후 외부인사와 만난 뒤 서울 계동 본사로 돌아와 추가 자구계획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그룹 재무 담당자들은 18일 오전 3시까지 밤샘 작업했고, 金위원장은 이날 오전 이를 외환은행에 제시해 오후 5시까지 밀고 당기기를 거듭했다.

金위원장은 미국에 체류 중인 정몽헌 회장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전권을 위임받아 자구계획을 마련했다.

외환은행측은 현대가 올해 1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하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는 9월 말 현재 현대건설 3천5백4억원, 鄭전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 매각 1천8백94억원 등 총 1조5천1백75억원 규모의 자구계획 가운데 5천3백98억원을 이행했다.

나머지 1조원은 주식.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이행이 어려운 상태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기존 자구계획 이행을 계속 독려하면서 별도로 연내 현금 확보 5천억원의 추가 자구계획을 요구한 것이다.

현대는 5월 31일, 7월 11일, 8월 13일에 이어 올들어 네번째 자구안을 마련했다.

연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진행 중인 자구계획이 현대 뜻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정몽헌 회장이 개인 주식을 팔아 현대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 등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구안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측은 현대전자 지분(1.7%)을 매각해 현대상선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물리지 않았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로 鄭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鄭회장은 앞으로 현대전자 지분을 팔아 현대건설이 보유한 상선 지분 23.86%를 확보해 최대주주(28.76%)로서 그룹을 장악할 움직임이다.

현대건설은 이날 1백39명의 임원이 참석한 본부장 회의를 열어 김윤규 사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현대 관계자는 "더 이상 머뭇거리면 쓰러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다" 며 "본부장을 포함한 이사급 이상 2백50여명 가운데 30~40%는 사퇴할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장인 김재수 부사장도 사표를 제출했다.

현대건설은 7천여명인 직원도 계약직 사원을 중심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임원 감축과 함께 일부 민간사업을 축소하고 해외사업장을 독립채산제로 운영할 방침이다.

충남 서산농장(3천1백23평)을 정부(농업기반공사)가 매입하는 방안은 현대측이 농장 개발에 투입된 원가만 6천5백억원을 요구한 데 비해 정부가 공시지가인 3천4백억원을 제시해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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