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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리뷰] 미야자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중앙일보

입력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 :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년도 : 1984년
러닝타임 : 120분
제작자 : 타카하타 이사오
제작사 : 톱 크래프트
음악 : 히사시 죠

얼마전 일본의 어느 잡지에서 '20세기 최고의 일본 영화 베스트 100'을 뽑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속에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진 키타노 타케시 감독이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도 다수 랭크되어 있었고 고질라나 모스라와 같은 특수 촬영 영화도 올라와 있었다. 10위권 내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故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이 몇 가지 올라와 있었다.

애니메이션 쪽을 보면 〈도라에몽〉처럼 매년 극장판을 내놓는 작품이나, 故 테즈카 오사무 감독의 〈불의 새〉 같은 전통적인 작품도 올라와 있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품으로는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의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이나,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공각 기동대〉(Ghost In the Shell)
와 같은 작품이 올라와 있었다.

일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합친 100등의 순위 속에 가장 많은 작품을 올린 감독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은 거의 모든 작품을 순위에 올렸다. 그 중에서도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는 애니메이션만을 뽑은 순위에서 1위, 전체 순위에서 3위에 올랐다. 1.2위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컬러 세대에게는 사실상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원령공주〉가 아니라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이하 나우시카)
일까. 여기서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원령공주〉는 〈나우시카〉에 비해서 갖는 장점이 많다. 90년대 들어 더욱 발달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CG(Computer Graphic)
라던가, 2D애니메이션 기술의 발달로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쓸 수 있었다. 음향기술도 발전해서 배경음악이나 효과음도 〈나우시카〉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그래도 〈원령공주〉가 〈나우시카〉를 이길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원령공주〉의 극장판 광고용 카피에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로부터 13년'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 카피는 〈원령공주〉와 〈나우시카〉가 '자연보호'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 공통적인 주제를 〈나우시카〉가 〈원령공주〉에 비해 잘 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나우시카〉는 미아자키 감독이 직접 13년 동안 '아니메쥬'에 연재한 초 장편 작품이다. 단편으로 끝나버린 〈원령공주〉와는 스토리의 무게가 다르다.

게다가 영화에 있어서의 액센트도 〈나우시카〉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원령공주〉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있다'는 평가는 들을 수 있지만 '감동적이다'라는 평가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도 사람들의 감정을 확 끌어올리는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우시카〉는 '여기가 감동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액센트'가 확연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불시착한 비행정에서 오무와 만나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다친 어린 오무와 함께 돌진하는 오무떼 앞에서는 장면 등은 말할 나위 없이 감동을 주는 장면이다.

특히 마지막에 돌진하는 오무와 충돌하는 장면은 무성으로 처리하여 슬픔은 마음으로 가라앉히고, 나우시카가 부활(?)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게하여 감동을 주는 솜씨는 〈원령공주〉에서 찾을 수가 없다.(이 클라이맥스를 무성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천공의 라퓨타〉나 〈키키의 마녀수업〉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좋아하는 방법인 모양이다.)

〈나우시카〉의 또 다른 장점은 캐릭터의 성에 있다. 〈원령공주〉에 비해서 선악의 구별이 확실한 것이다. 또한 등장 인물의 한 명 한 명에게까지 뚜렷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물뿐만이 아니다. 등장하는 사물들까지도 특징이 있다. 나우시카 전용의 소형 비행정 뭬베, 소형 전투기 건쉽, 다수의 대형 비행정, 〈미래 소년 코난〉에서도 나왔던 원통형 비행정, 분명 배경은 미래지만 중세적인 총과 검, 그리고 생체병기인 거인병까지 다양하고 특징있는 것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나우시카〉가 〈원령공주〉를 제치고 애니메이션계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

〈나우시카〉의 극장판 상영은 1984년이다. 60~70년대처럼 영화관 붐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직은 영화관에 사람이 모이던 시기였다. 그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같은 작품은 센세이셔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긴박한 사건 전개와 함께 '자연보호'라는 주제를 관철시킨 작품으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 후, 90년대에 접어들어 거품 경제가 붕괴되고 장기적인 불황시대에 접어들면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비디오와 비디오 대여점의 보급이 그런 현상을 가속화 시켰다. 더욱이 90년대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이 등장하여 애니메이션은 사람들과 많이 친근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애니메이션을 봐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기법'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앵글'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느끼게 되어버렸다. 어떠한 작품이 나와도 '센세이셔널하다'라는 평을 듣는 작품이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원령공주〉와 같은 경우에는, 앞서 나온 카피에서 본 것처럼, 〈나우시카〉의 이미지를 따왔다. 그 시점에서 이미 〈원령공주〉는 〈나우시카〉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게되어, 결국 〈나우시카〉를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12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극장 개봉을 한다.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의 개봉이라 기대가 된다. 이미 매니아들이라면 여러번 봤을 작품이지만 그들도(또한 나도)
극장에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Joins 하승빈 사이버리포터 <cityknight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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