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올라도 내 주식은 왜 … 삼성전자·애플 ‘착시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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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애플은 기업이 아니다. 하나의 업종이다.”

마크 모스코위츠JP모건증권 하드웨어 담당 애널리스트가 최근 보고서에서 정의한 애플의 정체다. 그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애플을 경기에 민감한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경기 민감 업종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S&P500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7%다. 이는 S&P500 지수에서 기초소재·유틸리티·통신 등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더 크다.

애플의 최근(24일) 주가는 522달러, 시가총액은 4871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엑슨모빌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덩치가 가장 큰 주식이 됐다. 한때는 시가총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렇게 덩치가 커지다 보니 “애플을 빼고 봐야 시장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S&P인덱스의 애널리스트 하워드 실버블래트의 분석에 따르면, S&P500지수가 지난해 1.55% 올랐지만 애플이 없었다면 0.47% 상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최근(22일)까지 S&P500지수가 8.24% 상승했지만, 애플을 빼고 계산하면 상승률은 7.7%에 그친다. 기술 업종으로 한정해서 보면 더 심하다. S&P500의 기술주는 2007년 이후 9.81% 올랐지만 애플이 없다면 상승폭은 4.1%로 줄어든다. 실버블래트는 “애플의 이익은 신생 벤처처럼 급증하는데 덩치가 너무 커서 정보기술(IT) 업종의 실적이나 주가를 전망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지 포춘은 이에 대해 “미국의 경제 회복이 애플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왔다”고 표현했다.

애플이 미국 주식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2일 장중 한때 120만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다시 썼다. 덕분에 코스피 지수는 연초 이후 9% 넘게 올랐다. 27일 코스피 지수가 30포인트 가까이 빠지며 2000선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8월 유럽 재정위기 우려로 2000선을 내준 후 6개월 만에 2000선을 탈환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돈을 벌었다는 개인투자자들을 찾기가 어렵다. 실제로 삼성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8월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2018.47포인트를 기록한 지난해 8월 4일의 코스피 지수를 삼성전자를 빼고 계산하면 1869.2포인트가 나온다. 지난 24일 코스피 지수는 2019.89포인트. 그러나 삼성전자를 빼고 구했더니 코스피 지수는 1778.26포인트로 6개월여 전보다 5% 가까이 떨어졌다. 이 기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62%에서 15.03%로 5%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에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따라 운용사와 자문사의 성적도 엇갈렸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1000억원을 웃도는 운용사 가운데 한국투신운용은 12.6%의 수익을 올려 가장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 운용사는 상대적으로 주식형 펀드 내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97%) 삼성전자를 많이 편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 들어 자문형 랩 수익률이 회복하고 있는데 자문사별로 성적이 크게 다르다”며 “삼성전자를 얼마나 들고 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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