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벤처인의 자금·인재·마케팅 지원해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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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미 대사관 부영사로부터 들었던 ‘레이디 보스(Lady Boss)론’에 따르면, 여성은 정보를 독점하면 불안해하고 나눠야 안심한다. 반면 남성은 정보 독점력으로 힘이나 카리스마를 발휘하려 한다. 때문에 여사장은 기업에서 정보 쉐어링을 훌륭하게 해낸다.”

“여성들에겐 술 문화도 없고 네트워크란 것도 없어요.” “여성들이 사업을 하려면 종잣돈 만드는 일부터 어디 하나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습니다.”

여성 창업자 수가 9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성들의 창업 환경은 매우 열악하며, 특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인적 네트워크 하나 제대로 없어 초기 단계의 소박한 사업 계획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들을 상대가 없다.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 여기저기 지인(知人)들에게 ‘종잣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 흔한 대학 동문회도 남성들 위주로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더욱이 벤처의 경우엔 역사가 2∼3년 정도로 짧은데도 소위 ‘1세대들만의 혜택’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다.

(주)휴먼아이브릿지(http://www.humanib.com)의 윤정화 대표(36)는 “여성들이 벤처를 창업하거나 운영할 때 특히 자금, 인력, 마케팅 등 세 분야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창업 자금을 대부분 본인의 은행 예금에서 충당한다는 현실은 그들이 사회적인 자금 조달·지원 체제에서 얼마나 소외돼 있는지를 시사한다.

또 여사장과 함께 일해본 남성들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현실은 여성이 ‘창업 동지’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서 룸살롱이나 접대, 로비로 상징되는 소위 ‘네트워크 마케팅’의 사업 풍토에서 여사장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여성 기업인 제품을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지원 제도는 이 같은 어려움을 잘 반증한다.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여성 관련 단체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남성들 사이에서 일을 배우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사)한국여성벤처협회 총무도 맡으면서 여성 벤처인 지원에 발벗고 나선 계기가 있었다. 97년 7월 벤처기업 특별법이 제정된 뒤 9월에 처음으로 열린 벤처 전문가 연수 과정에 참석했다가 2백명 참석자 가운데 여성이 유일하게 혼자였다는 사실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회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HR(Human Resource), 즉 핵심 인력을 어떻게 조달하고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를 컨설팅의 중심에 놓는다. 무엇보다도 일단 ‘좋은 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한 ‘여성 벤처 마트’나 ‘여성 벤처 펀드’ 등 여성 벤처인의 여러 난관들을 조직적으로 뚫기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도 HR이 밑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앞으로 벌일 ‘여성 벤처 창업보육센터’도 마찬가지다.

그는 종국엔 ‘인력개발전문가’로 불리길 원한다. 어렸을 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사회교육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란다. 그가 단지 여성 벤처인이나 여성 벤처기업을 컨설팅하고 보육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그만의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잠깐 기자 생활을 한 뒤, 뉴질랜드 국립대학교의 영어연수원 실장을 거쳐 국내에서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교육컨설팅 사업을 벌여나갔던 것, 세계 굴지의 인력 관련 회사에 몸 담았던 과거 이력들이 모두 하나로 엮어진다. 그가 7∼8개의 사회 활동 기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화려한 이력 때문인가. 그가 활짝 웃으며 “윤정화는 요즘 뭘 하는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다”고 뱉는 말이 그저 흘려듣기지 않는다. 아직 결혼을 안 했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온 그는 앞으로도 창의적인 일을 할 때의 기쁨을 위해 살겠다고 한다. 그는 2주 전에 열린 벤처기업인 전국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인 ‘벤처기업 지원 유공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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