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영어강사 김명선씨의 클래식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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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스피커로 공연장 음향 재현 김명선씨가 클래식 음악감상실인 ‘다락’ 안에 있는 대형 스피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학원 강의실의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고 스크린과 음향장비를 갖춰 감상실로 꾸몄다. [프리랜서 오종찬]

25일 오후 8시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클래식 음악감상실 ‘다락(茶樂)’. 지난해 4월 문을 연 190여㎡(80석 규모) 공간에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공연이 한창이다. 무대 중앙의 180인치 와이드 화면과 고성능 스피커 덕분에 실제 공연장에 온 듯 생생하다.

내부 인테리어를 편백나무로 해 숲 향기가 가득한 객석은 안락한 소파와 함께 학생들을 위해 2인용 의자 가운데에 책가방을 넣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었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민 누구나 무료로 이용(매일 오후 2시30분~10시)할 수 있는 이 곳엔 공연 영상 DVD 700여장을 포함해 클래식 CD 수 천 장이 있다.

 “무료시설 일수록 최고급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외 유명 연주회 실황을 직접 볼 수 없는 시민들에게 최고의 음악을 제대로 들려주고 싶었죠.” 이 곳은 1년 전까지만해도 ‘킴스스쿨’이란 학원의 강의실이었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김명선(62)씨가 3억원을 들여 공간 내부를 보완하고 스크린과 음향장비를 갖춰 감상실로 꾸몄다.

김씨는 1980년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광주 최고의 영어강사였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밤을 세워가며 줄을 섰고, 수강증에 프리미엄도 붙었다. 광주에서 가장 큰 학원 강의실에서 한 반에 480명이 동시에 듣는 수업을 매일 10시간씩 했다. 한달 수입만 5000만∼6000만원. 그가 만든 영어 교습서 『Essential 1405』는 전국에서 28만부가 팔렸다.

당시 일화 한 토막. 당시 학원가에선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시리즈가 인기 강좌였다. 김씨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학원장이 『성문종합영어』를 권유하면서 『Essential 1405』가 성공하면 자기 코를 베라’고 했다”며 웃었다고 한다.

학원 강의는 6년 만에 그만뒀다. 그는 “수강생이 몰리면서 다른 영어 강사들이 서울로 많이 떠났다”며 “미안한 마음에 강의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96년부터 그는 학동·두암동에서 학원 2곳을 잇달아 운영했다. 그 곳에선 영어 대신 성공학 강의를 했다.

그는 열 아홉 살에 교사가 됐다. 가난 탓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가 없어 초·중·고교 전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1970년 준교사 자격 순위고사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당시엔 사범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준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교사로 발령났다. 전남 함평 학다리고를 시작으로 광주 정광고와 춘천제일고, 경신여고, 송원고, 문성고 등에서 17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는 이제 클래식 전도사로 변신했다. 중학생 때 충장로를 걷다가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에 마음을 빼앗긴 게 인연이 됐다. 지금은 매일 다락에 나가 콘서트 실황을 보여주며 작곡가와 작품 등을 해설한다. 연간 4500만원에 달하는 운영비는 1층에 있는 커피숍 수익금과 아카데미 운영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김씨는 “클래식은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인내심을 키워준다”며 “영어를 가르치며 받았던 사랑을 무료 음악감상실을 통해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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