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망 뒤에도 희망은 찾아온다

중앙일보

입력

Joins 오현아 기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버림 받은 아이들, '사랑 받고 싶어, 인정 받고 싶어' 아무리 외쳐도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 아이들, 아픔도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던진 아이들.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이 아이들을 진정 받아안을 곳은 없는가.

〈교실 이데아〉(최병화 지음, 예담 펴냄)는 iTV 프로듀서인 최병화 님이 98년부터 1년여 동안 경남 합천의 원경고등학교를 직접 촬영, 제작한 다큐멘터리〈내일은 태양〉을 글로 옮겨 펴낸 책. 최병화 님은 이 다큐멘터리로 '99방송위원회대상에서 '올해의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상'과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등을 수상했다.

원경고등학교는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해 98년 설립된 대안학교. 이른바 '문제아'로 낙인 찍힌 53명의 아이들이 15명의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은이는 1년여 동안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교화 대상이던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바람의 정체를 알지 못해 떠돌 때마다 자신 역시 수없이 몸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고. 아이들의 눈물과 좌절 속에서 지난 날 자신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청춘과 사랑을 보아야 했다고.

울산 시내를 주먹으로 휘어잡았다는 인범이, 대안학교인 영산 성지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2학년으로 들어온 명애 등 원경고등학교에 모인 아이들은 화려한 외모만큼 이력이 다양하다. 아이들 대부분이 몇 년만에 책상에 앉을 정도니 '시절 인연'을 만들자는 선생님들의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수업을 시작해도 딴청을 부리거나 아예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하고 밤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 학교를 뛰쳐나가 며칠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나타나는 일은 일쑤 벌어진다. 선생님들은 이틀이면 한 번 꼴로 손목을 긋거나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쳐 피범벅이 된 아이들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선생님한테 야광 팬티를 선물하고 한바탕 웃다가도 가슴에 섬뜩한 바람이 불면 자신을 가학하면서 괴로워한다. '문제아'라는 이유만으로 맹장이 터질 때까지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던 아픈 기억에도 이들은 휘청 꺾이고 만다.

'이렇게 난리를 치는 데도 날 사랑할 수 있어?' 하면서 아이들은 악에 받친 듯 끊임없이 선생님들을 시험한다. '참된 교육'을 꿈꾸며 학교에 자원한 초임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절규를 들으며 서서히 지쳐간다. 그래도 24시간 아이들과 씨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보면서 최병화 님은 '저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라고 중얼거린다.

음주 흡연 자율에 따른 부작용 등 숱한 시행착오을 겪으면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아이들은 떠올리기조차 싫었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어둡고 긴 마음의 터널을 지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 사랑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생애 처음으로 맛보게 된다.

1년 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원경고등학교는 그 다음해 여덟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세상과 학교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하얀 신작로를 밟고 여덟 명의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절규하던 아이들이 이제 희망의 끄트머리를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절망을 껴안고 시작한 첫사랑의 순수, 그 곳에도 꽃은 핀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게 마련이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