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말라' 中, 우리 정부에 노골적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탈북자 신병 처리를 놓고 중국이 우리 정부에 강력하고도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측이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 금지를 촉구하고 나선 직후 체포된 탈북자 일부를 ‘보란 듯’ 북송시킨 것이다. 이는 우리 측 요구를 묵살한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이자 탈북자들을 난민이 아닌 ‘불법 월경자’로 취급하는 종전의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북한을 껴안고 간다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탈북자 신병처리에서 중국 당국이 유연한 자세를 보이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 처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해지면 탈북자에 대한 중국 당국의 단속과 북송조치는 더 엄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인권단체에서 우리 정부의 공개 압박이 중국을 더 경직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교통상부는 26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중국을 거명하지는 않는다는 계획이다. 압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국제여론을 환기하는 수준에 그치겠다는 뜻이다.

 탈북자 처리를 놓고 한국과 중국이 계속 평행선을 달릴 경우 양국의 외교현안들은 교착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 당장 양국 정상이 조속히 시작하기로 합의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진행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또 김정일 사후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는 데는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외교적으로 양국이 삐걱거리면 긴밀한 협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선 중국이 탈북자 문제에서 무조건 강경책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중 대립구도라는 큰 틀에서 국제 전략을 풀어나가는 중국 입장에서 탈북자 문제로 한국의 요구를 묵살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중국에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북한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정부·여당이 내놓은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민 증명서(여행 증명서로 일회용 편도 여권)’ 발급 방안의 실효성도 결국 중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탈북자가 한국인임을 우리 정부가 먼저 인정함으로써 중국 당국의 강제 북송을 견제하자는 게 ‘한국민 증명서’를 발급하려는 취지다. 최근 체포된 탈북자들도 ‘한국민 증명서’를 우리 정부가 보내주면 북송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새누리당 정책위 관계자는 “실효성 여부를 떠나 당정이 함께 만나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중국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3일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된 탈북자들의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 의원은 결의안에서 “1982년 국제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등에 가입한 중국이 20년 이상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시키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반인륜적·비인도적 인권 정책은 즉각 종식돼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안에는 한나라당 소속인 정의화 국회부의장과 김형오 전 국회의장,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 선진당 심대평 대표와 이회창 전 대표 등 29명이 서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