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등 중세의 모든 것 집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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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왜 노골적인 상업작가가 드물까? 문학성이니 예술성이니 하는 잣대 따윈 팽개치고 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걸로 출발하는 작가 말이다. 우리 같은 문학 풍토에선 '작가'라는 이름조차 허용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난 그런 이야기꾼들이 좋다. 이를테면 존 그리셤, 토머스 해리스,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할리우드 작가들 말이다. 그래서 흔히들 향내나는 소설이나 시집을 읽는 이 가을에 난 크라이튼의 신작〈타임라인〉을 읽었다.

애초부터 영화화될 것을 전제로 삼고 출발하는 소설이지만 크라이튼은 영화보다 소설이 더 재미있다. 〈쥐라기 공원〉과 똑같은 구성, 똑같은 인물, 똑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임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긴장감과 재미를 준다(간혹 만화 같은 장면이 거슬리고 결말이 좀 시시하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문학상 받을 작품도 아닌데). 유전공학과 프랙탈 이론에서 양자역학으로 과학의 내용이 바뀐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큰 재미는 공룡의 공원에서 중세의 백년 전쟁으로 무대가 바뀐 점에 있다. 그런데 그는 왜 갑자기 중세에 착안했을까?

소설의 권말에 크라이튼이 수록해놓은 참고문헌 중에 그 답을 말해주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라는 고전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서양 중세에 관해 공식 역사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말해준다.

사실 중세는 그 이름에서 받는 불이익이 크다. 고대와 근대를 잇는 '가운데 시대(Middle Age)'라는 이름 때문에 중세는 흔히 그 고유한 내용이 없는 애매한 시대로 여겨진다. 그래서 중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선입견이 있다. 어떤 이는 암흑 시대로 매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낭만적인 기사도의 시대로 동경하기도 한다. 전자가 주로 역사가들의 태도라면 후자는 주로 문학가들의 입장이다. 그 두 가지의 속된 선입견을 모두 뒤엎는 게 〈중세의 가을〉이다.

중세를 암흑 시대로 보는 건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자신들이 이룬 눈부신 업적에 압도된 나머지 그 바로 전 시대를 암흑 시대로 규정함으로써 자기들의 시대와 단절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관점이 후대에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중세를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르네상스 이전, 즉 중세와 르네상스 이후, 즉 서구의 근·현대 역사를 비교해보면 일견 그런 단절이 충분히 타당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 천 년이라면 인류 문명사의 1/5에 해당하는데, 그렇게 길다란 암흑기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설사 그렇다 해도 르네상스가 '부활'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새로운 시대라면, 최소한 중세는 그 새 생명을 낳은 거름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중세는 암흑기는커녕 거름도 아니고 르네상스와 서양사의 근·현대를 낳은 비옥한 토양이다. 〈중세의 가을〉은 바로 그 점을 크라이튼의 소설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훨씬 더 잔혹하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흥미롭게 보여준다.

중세의 궁정은 한편으로는 온갖 음모와 반란, 배신과 살인, 비밀스런 동맹이 이루어지는 살풍경한 곳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연회와 시 낭송, 종교와 예술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는 낭만적인 곳이기도 하다. 지극히 치졸한 모리배와 위풍당당한 영웅이 하나의 인물 속에 병존하는 게 중세다. 이런 일화가 있다.

1425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르 봉은 "내 백성을 전쟁의 파멸에 몰아넣지 않고 내 한 몸으로 이 전쟁을 끝맺도록 하기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험프리 드 글로체스터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두 사람의 결투를 위해 값비싼 장비와 온갖 의상, 천막, 휘장 등이 준비되고, 공작은 즉각 음식을 조절하면서 휘하 장수들과 함께 훈련에 들어간다. 하지만 결과는 용두사미다. 그 웅장한 천막은 1460년까지 걷히지 않았으나 결투는 결국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흐지부지된다. 필리프 르 봉은 1467년에 일흔한 살로 죽었다.

물론 당대 사람들에겐 진지한 일이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볼 때 이 이야기는 일종의 낭만적인 코미디다. 또 다른 코미디로 중세의 복잡다단한 예법이 있다. 프랑스의 왕비는 남편이 죽었을 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방에서 1년 동안 바깥 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제후의 부인들은 그 기간이 6주간인데, 가슴 수건을 두르고 두건과 망토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지낸다. 그녀가 있는 방의 벽과 바닥은 커다란 검은색 천으로 두른다. 그밖에 부친상과 모친상에는 아흐레 동안 침대에 누워 있다가 다음 6주 동안 검은 양탄자를 깔고 침대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사실 이런 예법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거다. 17세기에 조선의 왕 효종과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상(服喪) 기간을 놓고 남인과 서인은 두 차례나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효종은 형 소현세자가 일찍 죽어 차남으로서 왕통을 이었는데, 그가 차남인 걸 강조하면 자의대비는 보통 사대부 집안처럼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고, 그가 왕인 걸 강조하면 자의대비는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

만약 호이징가가 조선의 이 복잡하면서도 사소한 논쟁을 알았더라면 아마 서양 중세를 지배한 허식과 형식주의의 동양적인 변용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중세의 예법처럼 들여다보면 코미디에 불과함에도 우리 역사에서는 그것이 제법 그럴듯하게 '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흔히 서양의 역사에서는 중국이나 조선 사회처럼 예절과 격식이 없었던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예컨대 17세기 유럽의 각국에서 파견하는 대사들은 그 직급에 따라 해당국 국왕의 마차에 동승할 수 있느냐 없느냐, 자신의 마차에 커튼을 칠 수 있느냐 없느냐 등이 결정되었고, 국왕을 알현할 때 모자를 벗을 수 있는 대사, 황제 앞에서 모자를 쓰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사 등이 모두 법도로 정해져 있었다. 차이는, 서양에서는 그것이 한 시대의 문화적 관습에 불과했던 데 반해 동양에서는 그것이 다른 모든 것을 규제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가을에 매력적인 시대 서양 중세의 모든 것--기사도에서 사랑, 죽음, 상징,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을 다룬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읽으며 밤을 새보는 건 어떨까? 아울러 리치 블랙모어의 낭만적인 중세풍 앨범인 'Under a Violet Moon'을 함께 듣는다면 더욱 제격이겠다. 그러나 지명도 있는 출판사(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는 게 무색할 만큼 서투른 번역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읽어도 좋겠다.

남경태 (dimeol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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