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가면 그림이 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때 비바람이 몰아쳤다. 어떤 틈입도 허락치 않는 매서운 빗줄기가 거칠게 산의 정상을 찢었다. 산은 몇 번씩 휘청했다. 봉우리는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람은 집요하게 산을 압박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격앙을 절대 풀지 않은 채, 질풍노도의 기세로 산을 밀기 시작했다.

종횡무진, 호방한 기세를 뽐내는 비바람 앞에서 산은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그러나 모진 풍우에 중심을 잃고 기우뚱한 것은 실은 산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마음이다. 지인, 사천 이병연(李秉淵)을 피눈물로 떠나 보내야 하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자기해체적 마음이다. 빗줄기에 짓이겨지는 인왕산의 소나무 가지처럼 죽음과 손잡은 이병연을 그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통절한 마음이다.

겸재 정선. 임금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호를 불렀다는, 위로는 공경재상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에 이르기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바로 그 대가이다. 자신과 시화(詩畵)의 쌍벽이었고, 평생 지음이었던 사천 이병연의 임종을 지척에 둔 그의 칠통같은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들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문하의 용상으로서 '좌사천 우겸재'의 칭호를 받던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기록에 의하면 사천이 시를 써서 보내면 겸재가 그림으로 화답하고, 거꾸로 겸재가 그림을 보내면 사천이 시로 응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교유가 60여 년 지속되었다고 하니, 범인들은 그 우정의 심도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들의 우정은 마침내 시화첩(詩畵帖)으로 결실을 맺었는데, 〈시화상간도(詩畵相看圖)〉가 바로 그것이다. 시와 그림으로 한몸이 된 그들이 잉태한 최고의 걸작이다. 이병연의 시는 당시 그들의 우정을 가늠케 한다.

겸재 정선과 더불어 시가 가면 그림 온다는 기약이 있어
약속대로 가고 오기를 시작하였다.
(與鄭謙齋 有詩去畵來之約 期爲往復之始)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볼 적에
둘 사이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
모르겠네,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오주석 역)
(我詩君畵換相看 輕重何言論價間
詩出肝腸畵揮手 不知難易更誰難)

지척을 두고도 서로를 그리워한 두 사람의 우정은 지독했다. 따라서 사천이 세상과의 인연을 접어야 할 시점이 가까웠을 때 겸재가 받았을 충격의 강도와 깊이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겸재는 칼바람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는 닥칠 지음의 부재를 절대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경악과 통음. 거기다가 비는 며칠 째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를 며칠, 모진 풍상처럼 소나기가 인왕산 자락을 마구 헤집고 황급히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갑작스레 개인 초여름 오후. 겸재는 노구를 이끌고 사천과 시서화(詩書畵)를 논하던 인왕산을 투레질하며 올랐다. 그는 지음과의 끈질긴 인연을 반추하고 정리해야만 했다. 이때 인왕산은 생사의 길목으로 비약한다.

바로 〈인왕제색도〉. 며칠 세차게 몰아치던 소나기가 그치자 바위는 비에 후줄근 젖었다. 바위의 중량마저 비에 젖어 아직도 무겁다. 강우의 기세는 이렇게 대단했다. 아직도 물안개는 여운을 남기며 바람처럼 흐르며 하강한다. 운해(雲海)는 바위를 다정스럽게 애무하고 소나무 가지의 틈새를 비집으며 천천히, 천천히 하강한다. 바람이 불자 돌연 놀라며 미끄러져 각자의 길을 간다. 이처럼 흐르는 운해는 정지한 바위의 우람한 형세를 부각하고 바위를 기운생동하게 한다.

더해서 그는 찰필을 의도적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덧칠함으로써 굳세고 강한 바위의 중량감을 역설적으로 부각했다. 흰 화강암의 주봉을 흑색으로 거침없이 덧칠하여 비에 젖은 바위의 괴량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인상적인 그의 적묵법 탓에 바위가 화면을 압도한다. 묵선은 면(面)을 확보하여 시야를 호방하게 압도한다. 적묵이 강조된 강인한 주봉은 자연 그림의 중심이 된다. 안정된 산세는 주봉의 오른쪽 바위와 수림으로 이어지며 굽이치는 산의 동세를 형상한다. 중묵의 거침없고 대담한 필세가 화면 전체에 경쾌한 율동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때 운무(雲霧)와 적묵(積墨), 즉 백과 흑의 병치에서 발견되는 리듬감 역시 절묘하다. 주위의 바위들은 묵과 운이 형성하는 음영에 의해 입체가 된다. 중묵이 형성하는 선의 활달한 휘몰이. 암벽에 가해진 인상적인 미점의 운동성. 이때 야기되는 음양의 묘한 대립과 변화가 화면에 긴장감과 탄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그림이 웅장하면서도 한편 춤추는 듯한 리듬감을 간직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겸재는 거센 소나기가 그친 직후 인왕산의 실경을 이렇게 대담하고 장쾌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진경산수의 독창적인 기법을 창안한 대가의 진면목은 〈인왕제색도〉에 장대하게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보다 득의작으로 다가오는 것은, 닥친 지음의 임종을 장대하고 웅혼한 기개로 극복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겸재는 주봉의 웅혼한 기세를 장엄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과거 산처럼 우뚝했던 이병연의 쾌유를 소망했던 것이다. 원숙하고 대담한 조형은 이렇게 말년에도 빛을 발한다. 그것은 새삼 우정의 의미를 성찰케 하는 황홀한 경험이다.

조용훈 (yhcho@sugok.chongju-e.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