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싸고 우량-비우량은행간 견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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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별로 대기업 부실판정 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우량은행과 비우량은행간에 퇴출기업에 대한 견해가 달라 최종적으로 퇴출기업을 결정할 때 적지않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량은행들은 퇴출기업을 선정하면서 기업의 회생가능성 판단에 다소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 추가 자금지원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비해 비우량은행의 경우 기업 퇴출에 따른 대손충당금 부담이 훨씬 크기때문에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감안하더라도 기업 퇴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기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싸고도 드러났다.

일부 은행이 부실기업의 추가자금지원에 반대하더라도 채권단 전체 의견이 지원쪽으로 모아지면 워크아웃 규약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 우량은행 관계자는 "우리 은행의 경우 은행 손실을 줄이기 위해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추가자금지원은 가급적 안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으나 채권단 결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한 사례가 많다"면서 "이같은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 전체 채권단이 75% 이상(채권액 기준)의 찬성으로 추가지원을 결의할 경우 모든 채권은행들은 이에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위약금은 추가지원액의 해당 은행 할당금의 50%, 또는 그
기업의 해당 은행 채권액의 30%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업구조조정위원회가 부과할 수 있다.

또다른 우량은행 관계자도 "부실기업에 대한 채권은 비우량은행들이 많이 갖고 있으며 이 은행들은 기업퇴출시의 부담을 우려해 추가지원으로 몰아가곤 한다"면서 "우량은행들은 현실적으로 지분이 작기 때문에 별다른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대마불사 관행이 알게 모르게 작용해 왔으나 이번 대기업 부실판정에서는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기업들은 상당수가 퇴출되어야 은행이 건전해 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비우량은행들은 기업퇴출 판단시 자기 은행 입장만 고려하는 것은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량은행이라고 해서 이들이 기업금융 분야에서도 리딩뱅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비우량으로 분류되는 은행들은 그동안 산업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면서 기업을 지원해왔으며 이번 대기업 퇴출 판정때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은행간 입장이 상반됨에 따라 여러 은행에 큰 부채를 지고 있는 대기업의 퇴출여부를 최종 결정할 때는 우량-비우량 은행간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서울=연합뉴스) 주종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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