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첫인상 굴욕女, 부잣집 딸이란 '스펙' 밝혔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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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반인 짝짓기 프로그램 ‘짝’(왼쪽)과 ‘더 로맨틱’. ‘짝’은 사랑의 조건에, ‘더 로맨틱’은 사랑의 설렘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강렬한 첫 만남은 ‘일시 정지 버튼’ 같은 거다. 이를테면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이와 사랑에 빠진다거나(영화 ‘러브 어페어’), 택시에 무작정 합승한 그와 짜릿하게 통했던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 순간들. 그 기억을 꺼내어볼 때만큼은 삐거덕대던 일상도 소리를 낮춘다.

 일반인 짝짓기 프로그램 ‘더 로맨틱’(tvN)은 이런 순간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을 찾기까지의 설렘’에 집중한 덕일까. 11일 첫 방송 이후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1%를 넘어섰다. 케이블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이다.

 ‘더 로맨틱’은 일반인 미혼남녀가 출연하고, 제작진이 거의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를 찾게 한다는 점 등에서 ‘짝(SBS)’과 비교된다. ‘짝’은 지난해 3월 방영 이후 숱한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두 리얼리티 쇼를 비교해봤다.

 ◆현실이냐, 낭만이냐=두 프로그램은 각각 사랑의 겉과 속에 집중한다. 동전의 앞뒤와 같다. ‘짝’은 조건을 따지는 현실에, ‘더 로맨틱’은 사탕 같은 낭만에 방점을 찍는다. ‘짝’ 출연자들의 목표는 결혼. 그래서 외모도 보고, 스펙(배경)도 따진다. 첫 인상 선택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여자가 부잣집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때부터 남자들의 시선을 받는다. 시청자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 같은 남녀에 때론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본다. ‘날 것의 현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더 로맨틱’의 목표는 연애다. 운명의 상대를 찾기까지의 설렘을 즐긴다. 그래서 첫 만남의 방식이 독특하다. 비행기·택시 등 ‘꿈꾸는 첫 만남의 장소’ 몇 곳을 정해둔 다음, 같은 방식을 선택한 두 남녀가 실제 그렇게 만나도록 한다. 이렇게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도 나이나 직업을 묻지 못한다. 스펙에 휘둘리지 말란 얘기다. 남녀는 철저히 느낌에 의존한다.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선을 보러 온 남녀의 행동과 자연스레 만난 남녀의 태도가 다른 걸 떠올리면 된다. ‘짝’이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면, ‘더 로맨틱’은 짧은 시간이나마 낭만에 빠지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다큐냐, 예능이냐=두 프로그램의 색깔은 담당 PD의 ‘출신’과도 관련 있다. ‘짝’의 남규홍 PD는 ‘출세만세’ 등을 만들어 온 교양PD, ‘더 로맨틱’의 이명한 PD는 ‘1박2일’을 처음 만든 예능PD다. 남 PD가 “남녀가 짝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을 탐색한다”고 할 때, 이명한 PD는 “사랑을 찾기까지의 호기심에 중점을 둔 예능”이라고 말한다.

 ‘짝’이 애정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카메라를 두고 출연자의 표정·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을 때, ‘더 로맨틱’이 크로아티아라는 여행지로 떠나 출연자의 손에 셀프 카메라를 들려준 이유다.

 특히 출연자를 부르는 호칭·내레이션은 프로그램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짝’에는 다큐멘터리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여자1호’ ‘남자2호’ 등으로 불리는 출연자는 감정이입보다 관찰의 대상이 된다. ‘더 로맨틱’은 출연자를 로맨티스트라 명명한다. 여심을 자극하는 이승기가 내레이션을 맡았고, 정엽이 부른 달콤한 OST가 흐르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 수없이 반복돼온 짝짓기 프로그램의 특화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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