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혼자서 100분, 무대가 꽉 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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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뮤지컬 ‘위드아웃 유’(Without You)에서 1인 7역의 다양한 재능을 보여준 앤서니 랩.

소품이라고는 나무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관객 400여 명 앞에서 움직이는 건 앤서니 랩(41)이라는 금발의 배우 한 명뿐. 키 173㎝의 평범한 외모다. 의문이 들었다. 뮤지컬 ‘렌트’로 이름을 알린 배우라지만 혼자서 100분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 수 있을지.

 뮤지컬 ‘위드아웃 유’(Without You)는 1인 뮤지컬이다. 앤서니 랩 혼자서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7명 역할을 해낸다. 그는 뮤지컬 ‘렌트’의 오디션 보러 가던 순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렌트’ 공연 하루 전, 감독 조나단 라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따른 충격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암과 싸우는 어머니를 지켜보던 괴로움을 묘사할 때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드아웃 유’는 2년 전 국내 초연됐다. 일반인에 조금 낯선 배우였지만, 평단의 찬사가 잇따랐다. 올 공연은 2년 전 호평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 ‘인증샷’ 같았다. 앤서니 랩은 연기를, 노래를 잘했다. 고음을 쭉~ 빼거나 대사가 맛깔스럽거나 등의 차원이 아니었다.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럴 듯한 지점에 딱 어울릴 듯한 수준의 노래를, 대사를 했다. 귀에 쏙쏙 박혔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뮤지컬 연기의 교과서였다.

 무엇보다 어설픈 포장이 없었다. 그는 10살부터 연기해 온, 30년차 베테랑 배우다. 이번 무대에서 과거의 자신과 끊임없이 조우했다. 1인 뮤지컬이기에 그랬을 터다. 문제는 숨기고픈 아픔을 드러내느냐다. 그건 연기력이 아니다. 용기다. 그 지점에서 앤서니 랩은 우회하지 않았다. 꽁꽁 숨겨오다 어느 날 터져 나온,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겪었던 치욕과 가족의 상처를 그는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리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묵묵히 견뎌내는 것 뿐(The only way out is through)”이라고 노래했다. 그 건조함이 서늘했다.

김경희 기자

◆‘위드아웃 유(Without You)’=3월 4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 4만4000∼6만6000원. 1544-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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