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사르코지, 앙금 털고 원전동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친구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재선되길 바란다.” 데이비드 캐머런(46) 영국 총리의 입에서 니콜라 사르코지(57) 프랑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직후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을 여러 차례 험하게 비난한 것을 잠시 잊은 듯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캐머런 총리를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협조하지 않는다며 ‘역겹다(sick)’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다. 두 달 뒤에도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재정협약을 거부하는 캐머런 총리를 “정치적으로 실패한 고집불통 어린애”라고 깎아내렸다. 그렇게 대했던 캐머런 총리로부터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치적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은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의 공개 지지보다 더 큰 선물이다.

 스카이뉴스 등 유럽 언론들은 ‘영불 동맹(Anglo-French Alliance)’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두 정상과 양국의 협력 분야를 대서특필했다. 두 정상은 파리 정상회담에서 국책사업인 원자력 산업의 제휴, 무인 스텔스기 공동개발 등에 합의할 것이라고 BBC가 전했다.

 특히 원전 분야에서는 ▶원자력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핵 전문가 양성에 협력하며 ▶원자력 산업에 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캐머런 총리는 하루 전인 1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발을 위한 원자력 공동 발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의 원자력 연대는 세계적 차원의 ‘원자력 르네상스’에 제동을 걸었던 지난해 3월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이후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해 6월 영국 정부는 동부 도시 사이즈웰을 비롯한 8개 도시에 대해 ‘원전 신규 건설 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들 지역은 기존 원전과 인접한 지역이다.

 외신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그동안 ‘메르코지(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름을 합친 말)’로 상징됐던 독일·프랑스 밀월을 축으로 한 유럽의 역학관계에서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이 프랑스와 함께 무인 스텔스 전투기도 공동 개발하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양국이 협력의 지평을 넓히는 모양새다. 세계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독일의 힘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영국과 프랑스의 이번 원자력 협력은 사르코지의 재선 여부에 따라 이행될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올 4월의 프랑스 대선을 맞아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당선될 경우 2025년까지 원자로 절반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올랑드는 28%, 사르코지는 24%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스카이뉴스는 “조약은 장미꽃 혹은 어린 소녀 같아서 그 수명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효력이 유지된다”는 프랑스의 전쟁 영웅 샤를 드골(1890~1970)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양국 협력의 성공 여부는 사르코지의 재선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