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풋볼] '역전패의 대명사'로 몰락한 USC

중앙일보

입력

9월은 잔인한 달인가.

LA 고향풋볼팀이 21년만에 전국챔피언이 되는 모습을 보려던 앤젤리노들의 희망은 9월의 마지막 토요일날 처참하게 무너졌다. 3승무패로 전국랭킹 7위에 올라있던 남가주대(USC) 트로잔스가 한수 아래로 평가된 오리건 스테이트 비버스에 21-31로 덜미를 잡히며 1위 경쟁에서 탈락한 것.

LA의 양대희망이던 사립 USC-주립 UCLA가 약속이나 한듯 각각 오리건주의 약체학교들에 참패하며 적어도 20세기에는 LA에서 내셔널챔피언이 나오지 못하게 됐다.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풋볼지역으로 꼽히는 서부지구 퍼시픽-10(팩텐) 컨퍼런스는 현재 10개팀끼리 물고 물리는 대혼전으로 새천년 로즈보울 진출팀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력의 평준화속에 두드러진 현상은 전통의 명문 USC의 몰락. LA의 대표주자임을 표방하며 1백년이 넘는 미식축구 역사를 자랑하는 ‘트로이 군단’은 시즌초 사상 9번째 전국우승이란 야심찬 새천년 계획을 발표했으나 33년동안 26연승을 거둔 학교에 패하며 최대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단 USC뿐 아니라 대부분의 메이저대학이 아카데미즘은 물론, 풋볼 프로그램에 거액을 투자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의 국기’인 미식축구의 성적여부가 학교위상에 직결되는 최대의 홍보효과를 거둔다는 점 때문이다.

예를들어 로즈보울에 진출하는 팩텐 컨퍼런스 1위학교는 대회조직위원회로부터 1,200만달러(약130억원)의 천문학적인 참가비를 지급받는다. 게다가 최고권위의 로즈보울 경기가 매년 1월1일 황금시간대에 ABC-TV를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며 돈으로 따질수 없는 엄청난 학교선전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에따라 로즈보울에 나간 학교는 그해 가을철 고등학교 수험생들의 입학신청이 폭주하는 현상을 보이곤 한다. 더구나 뉴욕과 더불어 미국 최대도시임을 자부하는 LA지역은 프로풋볼(NFL)팀이 없어 USC-UCLA등 아마추어 대학교팀에 거는 팬들의 기대치가 다른 지역보다 높은 실정.

사립학교인 USC의 경우 80년 이후 무려 20년동안 부진이 계속되자 분노한 동문들의 기부금이 격감, 학교 운영이 어려울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70년대까지는 전국챔피언 등극 여부를 따졌으나 이제는 ‘로즈보울에 나갈수 있는가’로 기준치가 떨어졌다.

팬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패배 그 자체보다 경기내용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즉 상대팀이 잘해서 진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마다 쓸데없는 파울을 저지르며 자멸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 우수한 고교생 유망주가 고향팀을 마다하고 먼 플로리다까지 도망가는 인재유출현상도 심각한 실정에 이르렀다.

30일 경기는 ‘역전의 명수’가 ‘역전패의 대명사’로 전락한 오늘날의 LA풋볼을 증거하는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