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알지만 짜릿해서" 30대男, 스마트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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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베팅을 할 수 있다. 손안에 도박장이 열리는 셈이다.

직장인 박모(33)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스포츠 도박’을 즐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도박을 자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퇴근길에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도 쉽게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고 베팅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새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크게 늘었다. 스포츠토토 신고센터에 따르면 2010년 신고된 불법 사이트는 7951건에 이른다. 2007년만 해도 수십 건이었지만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박장에 가지 않아도, 심지어 PC가 없어도 ‘내 손안의 도박장’ 스마트폰을 통해 마음껏 베팅을 할 수 있다.

 박씨는 “평소 도박을 즐기지 않았다. 스포츠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친구의 권유로 장난 삼아 스마트폰 베팅을 시작했다. 유럽의 유명 축구팀 승리에 100만원을 걸어 곧바로 185만원(배당률 1.85)을 받았던 첫 베팅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돈을 딸 때보다 잃을 때가 많지만 여윳돈만 생기면 베팅을 한다. 박씨는 “도박인 것은 알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불법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베팅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회원 가입을 하고, 인터넷뱅킹을 통해 게임머니를 환전하면 최대 30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감독하는 스포츠토토의 한도(10만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베팅 항목도 다양하다. 승패와 득점 등 스포츠토토에서 시행하는 항목뿐 아니라 불법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세세한 항목들이 있다. 일부 선수가 경기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프로야구의 경우 초구 스트라이크, 특정 타자의 안타 수에 베팅할 수 있다. 또 불법 사이트는 경기 중에도 베팅이 가능하다. 2번타자가 출루했을 때 4번타자의 안타 여부가 베팅 항목이 된다.

 일부 베팅 사이트는 한 경기 중 다수의 항목에 중복 베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모 불법 사이트에는 지난해 10월 5일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6개의 베팅 항목이 걸렸다. 홈팀 승리(배당률 2.05), 홈팀 1회 득점(2.00), 원정팀 1회 득점(1.80), 양팀 점수합계 8.5점 초과(1.90), 홈팀 선발 초구 스트라이크(2.10), 원정팀 선발 초구 스트라이크(2.05)를 모두 맞히면 배당률이 총 60.365다. 100만원을 베팅해 모두 맞혔다면 6036만5000원을 받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천만원의 돈을 따거나 잃을 수 있다.

 결과를 맞히면 자신의 계좌에 배당금이 1시간 내로 입금된다. 경기 전 베팅만 허용되고, 배당금은 2~3일 뒤 지급되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불법 사이트에서는 마치 도박장에 온 것처럼 실시간으로 큰돈이 오간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불법 사이트 이용은 훨씬 편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불법 사이트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 사이트는 정부의 단속을 피해 도메인만 바꿔 영업하는 수법으로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박씨는 “평소 단속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가 없어져도 금세 운영자로부터 ‘새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연락이 온다”고 전했다.

김식·유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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