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우레탄 도로 부실시공 … 세금 150억 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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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라매공원 산책로에서 취재팀이 천공기로 바닥을 뚫어 시료를 채취했다. 공사 시방서에는 골재·고무칩을 혼합접착바인더(본드)와 섞어 중간층을 만들게 돼 있지만 분석 결과 값싼 일반 아스콘을 쓴 것으로 판명됐다. [변선구 기자]

취재팀은 시방서와 다르게 시공된 편법·부실 현장을 직접 찾아나섰다. A업체가 시방서상에 내세운 특수공법은 ‘2중 탄성포장 공법’이다. 표면층과 원래 지반 사이에 골재와 고무조각을 넣고 혼합접착바인더(일종의 본드)와 섞어 기층(중간층)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스콘으로 기층을 시공하는 일반공법에 비해 물 빠짐과 탄성이 더 뛰어나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시료검사 해보니 일반 아스콘으로 판명=취재팀이 맨 먼저 찾은 곳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이다. 서울시는 2007년 공원 운동장 주변 산책로 탄성포장 공사를 발주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공원 시방서에는 중간층에 골재와 고무칩, 혼합접착바인더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특수공법이 적용됐음을 뜻한다. 천공기를 이용해 지름 10㎝ 정도의 코어 형태로 시료를 채취했다. 공원의 연못 주변에도 탄성포장 공사가 돼 있다. 이곳의 표면층은 산책로와는 달리 푹신한 고무재질이 아닌 규사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기층에는 같은 방식의 특수공법을 적용하도록 돼 있었다. 서울시는 이 두 곳을 포장하는 데 3억3000여만원을 들였다.

 취재팀은 서울 남산 국립극장~청계천 간 자전거도로,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조깅로, 충북 음성 금왕생활체육공원,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 어린이 물놀이 공원 등에서 추가로 시료를 채취했다. 보라매 공원처럼 기층을 특수공법으로 만들게 돼 있는 곳이다.

 정부가 인증한 시험기관에 시료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모두 일반 아스콘으로 나왔다. 또 첨가했다는 고무칩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취재팀은 특수공법이 실제 적용된 경기도 이천시 중리동 어린이공원을 찾아 시료를 채취했다. 고무칩과 골재가 바인더와 뒤엉켜 있었다. 한눈에도 일반 아스콘을 쓴 것과 분명하게 구별됐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준공 후에는 중간층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부실 여부를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공사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업체 측은 “경찰 수사 중이어서 일일이 답변하지 않겠다”면서도 “조달청 규격서대로 했을 뿐 편법·부실 시공한 적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A업체 측은 공무원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악성 민원인의 일방적 주장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편법 시공하면 공사비 50% 덜 들어=기층을 특수공법으로 시공하면 비용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층을 일반 아스콘으로 시공하면 납품시공가(견적가)의 40~50% 정도 공사비가 적게 든다”고 말했다. 일반 아스콘일 땐 반나절이면 공사가 가능한데 반해 특수공법을 적용하면 이틀이나 걸린다. 수사팀은 “시방서대로 하면 비용·시간이 많이 드니 일반 아스콘으로 시공하라는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A업체 내부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업체는 부실을 덮기 위해 자사가 관련된 소송 과정에서도 해당 지자체와 재판부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의혹도 제기된다. 거래한 아스콘 회사로부터 고무칩(분말) 등을 첨가한 제대로 된 자재를 납품했다는 ‘사실 확인서’에 사인을 받아 부실을 감추는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취재팀이 접촉한 일부 아스콘 회사들은 “사인해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해 업체 요구대로 해 줬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편법공사로 낭비된 세금은 얼마나 될까. 취재팀이 입수한 보라매공원 등 다섯 곳의 공사 계약서와 A업체의 단가 자료를 근거로 실제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공사계약금 총액은 19억4500여만원, 부당 이득금은 8억5800여만원으로 추산됐다. 세금으로 지급하는 공사비의 절반 가까이가 낭비됐다.

 ◆부실 공사 규모 더 클 수도=편법 시공은 A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4~5개 업체도 A업체에 특허사용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같은 공법을 내세워 공사를 수주한 사실이 경찰에 포착됐다. 이들도 실제 공사 때는 일반 아스콘을 썼다고 한다. 피해를 본 정부기관·지자체가 알려진 140개를 훨씬 웃돌고 전국적으로 1000여 곳 이상이 추가로 편법 시공된 것으로 추정돼 부실 공사 규모는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이가혁·하선영 기자, 김보경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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