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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들이 2탄 - 환상과 모험의 나라

중앙일보

입력

어렸을 때, 어린이날이나 생일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놀이동산이 생각날 거다. 롯데월드나 서울랜드도 없던 때여서 창경원이나 어린이대공원에 가던 시절. 몇년에 한번쯤 자연농원에서 청룡열차라도 타는 날은 그야말로 호강하는 날이다.

어릴 때 기억은 평생 남는지라 '놀이동산'이라는 말에는 아직까지도 마음이 설렌다. TV에서 대관람차만 봐도 눈이 번쩍 뜨이고 날씨 좋은 가을날에는 소리치며 88열차나 바이킹을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생각만 하지 말고 이번주에는 그/그녀와 같이 가자.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서울대공원으로. 앗! 카메라 지참 잊지 마시고.

13:00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에서 오늘 데이트가 시작된다. 과천 서울대공원이라면 굉장히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지하철로 시내에서 30분이면 도착한다.

13:00 - 13:30 칙칙폭폭 코끼리 열차를 타고

진짜 칙칙폭폭 소리가 나는 열차냐고? 무슨 그런 순진한 말씀을... 2번 출구에서 그/그녀를 만나 저 앞에 보이는 코끼리 열차 매표소까지 3분 정도 걷는다. 걸어가는 길은 역시나 좋다. 노점상들의 "김밥 세개 2천원" "뻔~" 소리가 없다면 더 좋겠지만 놀이동산 가는 길에 이정도 장사아치는 애교로 봐줄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토요일이라 사람은 많을 거다. 미리 오늘은 사람에 치여 고생 좀 하는 날로 생각하고 인파때문에 짜증내는 일은 없도록 하자.

물론, 지하철역에서 서울랜드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데이트 초장부터 힘든 일을 사서하는 일일 테니 500원씩 내고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가자. 열차 매표소 오른쪽편을 보면 웬지 더 멋져보이는 리프트가 있다. 이 리프트를 타도 서울랜드까지 갈 수는 있지만 가격이 코끼리 열차의 여섯배인 3천원이므로 웬만하면 자제하는 것이 좋다. 정 타고 싶으면 이따 미술관이랑 동물원까지 다 보고 내려올 때 타자.

13:30 - 14:10 입장과 동시에 점심식사를

코끼리 열차를 타고 서울랜드 정문에서 내려 자유이용권을 사자. LG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독자라면 지난달 카드청구서와 함께 서울랜드 50% 할인권이 왔을 거다. 리더스클럽 카드로는 25% 정도 할인되는데 이 비율은 시즌마다 다르고 주말에는 할인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미리 02-504-0011로 전화해서 확인하고 가자. 다섯개정도만 골라서 탈 사람들은 빅5 티켓을 사도 되지만 빅5와 자유이용권은 4천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 나라면 4천원 더 내고 자유이용권 산다. 재밌는 건 몇번씩 타야되니까...

입장해서는 일단 점심식사부터 하자. 단, 미리 생각해야 할 건, 놀이공원에 있는 식당은 전국 어디서나 대개 다 맛이 별로라는 거다. 오늘은 맛난 거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신나게 즐기러 온 거니까 그냥 허기나 달래는 정도로 생각하고 참자.

입구 들어가자마자 리틀프린스라는 햄버거 가게가 있고 바로 그 오른쪽 모험의 나라에는 돈까스나 오므라이스를 파는 식당, 로데오가 있다. 서울랜드 안에는 우동·떡볶이같은 가벼운 스넥 파는 곳에서부터 중국집·한식집·바베큐 집 등등 여러가지 음식점이 있다. 입구에서 안내도를 얻어서 식당의 위치를 파악하고 빨리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본격적으로 놀이동산 나들이에 나선다.

14:10 - 17:00 신나는 놀이동산 서울랜드입니다

서울랜드는 지금 국화축제(이름하여 국화페스타)가 한창이다. 눈에 쏙 꽂힐 정도로 예쁘게 해놨다. 이 풍경을 사진에 안 담는다면 무엇을 찍으리오. 야외촬영하는 예비신부보다 더 매혹적인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고맙게도 -어찌 보면 유치하게도- 중간중간 사진 찍기에 좋은 포인트도 만들어 놨다.

정문 오른쪽의 모험의 나라부터 시작하자. 킹바이킹과 급류타기(이제부터 가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을 뜻함 급류타기=후룸라이드)를 먼저 섭렵하고 해적 아저씨 옆에 앉아 사진을 하나 찍자.

모험의 나라를 지나 환상의 나라로 들어가면 추억의 박치기차(범퍼카)와 아기다람쥐(다람쥐통), 그리고 회전목마가 우리를 기다린다. 미니바이킹이나 클래식카·낙하산·코끼리 비행기 등은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니까 탈 생각 하지 말자. 괜히 망신만 당한다.

록까페라는 놀이기구는 저기 인천 월미도에 있는 엉성한 놀이공원에서 유행하던 시설을 보고 만든 것 같은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러운 놀이기구라서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개인의견이니까 옆에서 쓱 보시고 재밌을 거 같으면 이용하시고. 2002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월드컵이라는 놀이기구도 타볼 만 하다.

소리지를 만한 놀이기구가 가장 많은 데는 미래의 나라다. 박진감 넘치는 롤러코스터가 은하열차888·블랙홀2000이란 이름으로 두개 있고 서울랜드의 간판 스타 마법의 양탄자도 있다. 번쩍거리는 터널을 빠져나오는 은하열차888은 궤도가 긴 편이라 타고 나서 "애개 이렇게 짧아?" 소리는 안 나온다. 블랙홀2000은 곤두박질과 회전의 명수다. 오오 재밌다.

은하열차888과 블랙홀 사잇길에는 얼굴 없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릴린 먼로 그림이 있다(사진 참고). 여기가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짓을 해보겠냐 생각하고 구멍에 얼굴 들이밀고 사진 한장씩 찍어두자.

마법의 양탄자는 보기에는 단순해보이나 일단 타보면 휘잉~ 하는 엄청난 회전소리와 그 속도때문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놀이기구다. 이 동네에 숨겨진 보물이 또 하나 있으니 그 이름 달나라 열차. 영어이름 크레이지 마우스(crazy mouse)로 2인용-4인용이던가? 하여튼 몇명 안 됨- 쥐 모양 차를 타고 궤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설이다. 역시 재밌다.

새로 생긴 샷드롭(자이로드롭)도 미래의 나라에 있다. 지상 50m 공중으로 슉 올라갔다가 빠르게 위아래로 탱탱 튕기기를 몇번 한 후, 다시 위로 끌어올려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뜨리는... 자이로드롭보다 기능에서 한단계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냥 떨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드리블하듯이 땅에서 위로 팅팅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3인용 번지점프라고 할 수 있는 스카이X도 재밌어 보였는데 이거는 자유이용권으로 탈 수 있는 게 아니라 별도로 요금을 내야 돼서 못 해봤다. 1명이면 1만5천원, 2명이면 2만원이다. 세명이 한조가 돼서 지상 55m까지 올라갔다가 스카이다이빙하듯이 하늘을 휘잉~ 나르는 건데... 재밌을 거 같다.

미래의 나라를 빠져나와 호수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베니스 무대 옆으로 아주 짧은 호반 산책로가 나온다. 여기가 서울랜드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다. 상냥하게 그/그녀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호수를 보고 있으면 서울랜드의 그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다 묻히고 세상에 오직 둘만 있는 것 같아 행복해진다.

이제 삼천리동산으로 간다. 빈대떡이나 국밥 등 우리 음식을 파는 장터가 있고 놀이동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신동굴이 있는 곳이다. 사실 귀신동굴이라면 거의 시시하고 별 거 아니지만 서울랜드에 있는 건 으음~ 만만하지 않다. 나이 들어 찾아가도 깜짝 깜짝 놀라기 일수다. 다리 밑에서 손이 나와서 발목을 콱 움켜쥐기도 하고...

이렇게 돌았으면 거의 볼 만한 시설은 다 본 셈이다. 아마 놀이기구 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 될 거다. 아무래도 주말이라는 거 잊으면 안 된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사격장에서 사격도 해보고 만화영화박물관에서 캔디나 피카추도 만나자.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입체영화도 지나치지 말고. 중간중간 스노우아이스도 사먹고 핫도그도 사먹으면서 주말 오후를 최대한 즐기자.

놀이동산만큼 그/그녀와 나의 사이를 한번에 확 끌어올려주는 장소도 없다. 아마 일요일 데이트 때는 놀랄만큼 진전된 그/그녀와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17:00 - 18:00 미술관옆 동물원

들뜰대로 들떠있는 서울랜드를 빠져나와 정문에서 왼쪽으로 향하자. 이 길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큰길 따라 삭막하게 가지 말고 정문 건너편의 잔디밭으로 흙밟으면서 가자. 야외결혼식장으로도 쓰이고 있는 넓은 잔디밭은 놀이동산의 북적거림에 조금 지친 당신과 그/그녀의 심신을 감싸주기에 그만이다.

잔디밭을 죽 따라가다가 건너편에 현대미술관 간판이 가까와지면 다시 큰길을 건너자. 입구에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걸려있고 저 멀리 조각공원이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 조각들이 찬찬히 놓여있다. 가만가만 걸으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느낌이다.

현대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서 전시도 보고 차 한잔 하는 것도 좋겠지만 가을특집 야외데이트니만큼 음식점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안에 들어가는 코스는 빼겠다.

야외조각공원을 위 아래로 구분하는 돌계단은 이 공원의 백미다. 하나하나 계단을 내려가면 조금 좁은 잔디밭과 작품들이 나오고 저 멀리 서울랜드가 아스라이 보인다. 괜히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을 쓸데없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말 한마디 안 해도 그 공간과 시간과 그/그녀와 당신만으로 더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풍경이다.

조각공원을 천천히 거닐고 이제 그 옆의 동물원으로 눈을 돌리자. 오옷 정말 바로 옆이다. 미술관옆 동물원이다. 미술관 입구 바로 옆에 동물원 후문이 있는데 여기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통로다. 어쨌든 두 공간이 옆으로 붙어 있는 건 사실이다. 재밌다. 헤헤.

동물원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미술관 입구를 다시 빠져나와 북문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동물원 나들이는 생략한다. 동물원이나 돌고래쇼에 관심있는 독자는 다음기회에 꼭 다시 들르자. 그때는 동물원과 과천경마장 두곳을 거치는 데이트를 해보면 어떨까.

18:00 - 19:00 다시 코끼리-대공원역-사당역으로

동물원에 굳이 가야겠다는 독자라면 지금부터의 스케줄을 한시간씩 늦추고 19시까지 동물원 관람을 해도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시 코끼리 열차를 타고 대공원역으로 향하자.

코끼리 열차는 동물원 정문에서 탈 수 있다. 역시 500원. 이번에는 리프트를 타보고 싶은 사람은 미술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리프트 승차장에서 타면 된다.

저녁무렵의 과천 바람을 맞으면서 대공원 전철역까지 돌아오면 웬지 아쉬워 자꾸 돌아보게 된다. 더 있다 가고 싶다. 언제쯤 또 오게 될까. 그래도 The show must go on이니 이제 서울대공원에서의 추억은 한번 접어놓고 다시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고개방향으로 지하철을 잡아타고 10분을 가면 사당역에 도착한다. 5번 출구로 나와 오늘 저녁식사 장소로 걸음을 옮기자.

19:00 - 21:00 신선한 참치회로 배불리기

5번 출구를 빠져나와 20미터쯤 걸으면 건물 2층에 '연승참치' 간판이 보인다. 가게 이름만 보면 주인장이 야구를 좋아하나... 싶기도 하지만 연자는 이 연(延)자고 승자도 그 승(勝)이 아니고 이 승(繩)자다. 참치를 잡는 형태의 하나로 연승어업이 있다고 하는데 줄을 연결해서 한다는 건지... 확실한 뜻은 모르겠다. 어쨌든 원양어업의 한 방법인 것 같다.

다른 메뉴 다 빼고 오직 참치회 하나로만 승부하는 집이다. 메뉴는 참치회-참치머리-참치**(생각이 안 난다. '참치 뭐뭐'였는데...) 세가지와 각종 술로 이뤄져 있다. 참치회 1인분에는 1만5천원이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학생이라면 "뜨아~ 비싸다"하겠지만 일주일에 한번 잘 먹는다 생각하고 미리 절약한다면 그렇게 다른 세상 얘기처럼 반응할 필요는 없을 거다.

다른 동○참치나, 사○참치처럼 한 접시 턱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계속, 먹다 지칠 때까지 참치회를 주고 주고 또 준다. 실내는 방 하나와 바(bar)로 돼 있는데 이 바 안에서 참치회를 서빙하시는 아저씨 세분이 틈틈이 손님들의 먹는 속도를 살피며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만큼의 참치회를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계속 준다.

내주는 참치회도 그냥 그런 수준이 아니다. 신선하고 맛있다. 특히 본 기자가 좋아하는 고소한 참치뱃살(일본말로 '도로'라고 한다)이 많이 나와서 너무 좋다. 처음에 기웃기웃하며 찾아갔다가 한번 가면 그날로 단골명부에 이름 올릴 만한 집이다. 손님도 너무 많고 맛도 좋다. 가격도 주는 것에 비하면 절대 비싼 거 아니다. 단, 자리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전화예약을 먼저 하고 가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02-583-9428.

21:00 - 깊어가는 가을밤, 그냥 지나치기 아깝지

자자 가을 향기에 푸욱 젖어버린 오늘 공식 스케줄은 이것으로 끝. 방배포장마차촌에서 쏘주 한잔 걸치는 것도 좋고 오늘 개봉한 〈스토리 오브 어스〉나 〈뉴욕의 가을〉의 유혹에 빠져도 좋다. 연승참치를 빠져나와 과천쪽으로 20미터쯤만 더 걸으면 보이는 칵테일바, 볼로에서 외유내강형(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시다보면 금방 취해버리는 특징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내맘대로)의 칵테일을 골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쨌든 토요일이고 가을이다. 잊혀지지 않을 밤을 만들어야되지 않겠나. 으흐흐흐흐.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됐습니다. 데이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세달반이나 됐습니다. 정말 세월 빨리 갑니다. 목요일에 기사 올릴 때마다 '휴우 이번주도 무사히 넘겼구나'싶어 마음 푹 놓고 숨 돌립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다시 목요일이네요. 왜 이리 마감날은 빨리 돌아오는 것인지... 으흐흑... 그래도 여러분이 열심히 읽어주시니 항상 감사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음주, 가을 나들이 3탄도 기대해주시구요 항상 행복데이트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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