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 여론 女論

목사참회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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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나는 35세 때 어느 술집에서 나오다가 첫 번으로 전도를 받고, 어느 친구의 집에서 둘째 번으로 어느 늙은 전도 부인에게 전도를 받았다. 결국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는 목사나 하면 어떠할까 하는 욕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늙은 전도 부인의 말에는 목사만 되면 한 달에 백여 원 수입이 있다는 바람이었다. 사실 말이지 그때의 백 원이라면 큰돈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렇지만 자식들이 많은 구차한 살림에 백 원이라는 것이 사실 구세주이었으니 믿기는 예수보다 백 원을 믿었다.”(‘목사참회록, 부흥회 가기 전에’, 『별건곤』, 1928.8)

 1920~30년대 대중잡지였던 『별건곤』은 상업적 전략으로 ‘사생활 엿보기’성 기사를 자주 실었다. 그 형태로는 ‘단발랑 미행기’ ‘대탐사기-깍정이로 변신 잠입하여 포사군(捕蛇軍)의 소굴에 일야동숙’과 같은 미행·탐사보도와 ‘어느 사생아의 고백’ ‘모던걸 참회록’처럼 유명인사 및 특수 직업인들의 회고·수기가 대표적이다.

 위의 글은 ‘참회 특집’으로 목사, 의사, 교사, 기자의 고백록 모음 속에 실려 있는 ‘김○순’이라는 익명 목사의 글이다. 그는 “어찌해서 목사들의 부흥회가 없는지(…) 목사도 다른 교인과 같이 인간인 이상 생활하게 되며 또한 그 외에 식욕 색욕 정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들의 부흥회가 없으니 목사들의 참회도 없는 것”이라며 자신은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제대로 참회해야겠다고 말한다. 50대 목사인 그는 이 글에서 젊었을 때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목사가 되었던 자신의 불순한 의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 특집에서 의사는 의료과실을 은폐하고 병원 수익을 위해 선별적 진료를 했던 일 등에 대해 고백했고,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을 성폭행했다가 가족과 직장 모두를 잃었던 과거를 털어놓았으며, 기자는 신문사를 옮길 때마다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바꾸고 매문(賣文)을 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이들의 참회 내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참회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고위층의 비리나 부정부패와 관련된 소식은 매일같이 들려온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에 대해 제대로 참회하는 자는 흔치 않다. 최대한 ‘모르쇠’로 일관하고 ‘배 째라’ 정신으로 버틴다.

 그들이 제대로 참회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감시와 기억일 것이다.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너무 쉽게 잊어주는 것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에 반복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청렴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추어선 안 될 것이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