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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는 왕따·폭력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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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최근 교육현장의 이슈다. 폭력 강도는 높아지고 폭력 방식도 지능화·다양화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근절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를 막아 내려면 현장에 있는 학생과 교사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학생들이 나서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장이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과 포옹하며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학교들이 있다.

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용인 흥덕고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학교폭력 예방프로그램을 통해 ‘왕따’를 없앴다. 김태호군(왼쪽에서 두번째)은 교사와의 끊임없는 상담을 통해 경찰관의 꿈을 키우고, 8~9등급이던 모의고사 성적을 3등급대로 올렸다. [최명헌 기자]

용인 흥덕고=2010년 개교 당시 신설 학교라는 이유로 학생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학교로 분류됐다. 1기 입학생들의 중학교 내신성적은 100~120점(200점 만점 기준) 수준. 상당수가 중학교 때 ‘놀았다’는 문제아였다. 개교 초반만 해도 학내엔 폭력사건이 빈번했다. 김태호(2학년)군은 고교에 입학해 같은 학교 친구를 때려 1년 동안 보호관찰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지금, 흥덕고엔 더 이상 ‘폭력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 결과다. 지난해부터 경기도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또래중조(中調)’ 교육을 실시한 것. 또래중조 프로그램에 지원한 학생들은 1년에 30시간씩 폭력사건을 중재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을 배웠다. 현재 1학년 학생 12명, 2학년 학생 8명, 학생회 임원 30명 등 총 50명이 또래중조인으로 활동 중이다. 유진선(1학년)양은 “갈등을 빚고 있는 학생들 각각의 입장을 듣고, 오해한 부분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점심시간마다 학생식당 앞에서 ‘학교폭력은 안 돼요’ ‘친구를 위하는 작은 마음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는 팻말을 들고 캠페인을 벌인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찾아 전교생들과 프리허그(Free Hug)를 하며 친구를 사귀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1학년 때 2개월 동안 가출했던 김준이(2학년)군은 “전교생들과 프리허그를 하는 과정에서 ‘진심을 담아 나를 안아 주는 친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과 1주일에 1~2차례씩 면담을 한다. 김태호군은 “교사와의 면담으로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초 이만주 학생부장과의 면담과정에서 ‘경찰관이 되겠다’고 공언한 뒤 전 영역에서 8~9등급이었던 모의고사 성적을 3등급대로 끌어올렸다.

성남 보평초=2009년 9월 개교한 뒤 매년 200여 명의 전학생이 몰리는 학교다. ‘폭력 없는 학교’로 소문이 퍼지면서다. 등교시간이 되면 매일 아침 교문을 지키는 한 사람이 있다. 서길원 교장이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해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학생들은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학생들과 악수를 나누고 교사들과의 회의 과정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에게는 포옹을 청한다.

교문을 지나 학급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또다시 담임교사의 환대를 받는다. 이 학교 교사들은 등교시간인 오전 8시20분부터 30분 동안 업무를 보는 대신 자신이 맡은 반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린 학생들에게 사소한 다툼은 불가피하다. 박준형 교사는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2개 학년, 16~17명의 교사가 모여 해결책을 의논하고, 해당 학생을 어떻게 지도 할지 모색한다”고 말했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 식으로 2개 학년을 맡은 교사들을 묶은 미니스쿨제 시스템을 만든 것도 위아래 학년의 생활습관을 공유하며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회의 과정에선 2개 학년 모든 학생의 사진을 띄워 놓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한다. 교사들이 그 학생을 만났을 때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1기 졸업생인 김시아(13·보평중 1)양은 “‘욱’하는 감정 때문에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도 선생님들이 이름을 부르며 토닥여 주면 잘못을 더 깊이 뉘우쳤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교폭력 유형에 따른 해결방안을 구체화한 ‘지침서’도 만들었다. ‘신체·물리적 폭력’에 대해 ‘학생과 함께 폭력을 행사한 원인을 알아보고, 서면으로 사과한 뒤 용서받기’ ‘학부모와 함께 피해학생이 겪는 어려움 알아보기’ ‘학급자치활동에 해당 폭력 문제를 안건으로 토의하기’ 식의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폭력행위의 원인과 문제점, 해결방안을 직접 모색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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